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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64년 뉴욕 베라자노 대교 개통

입력 | 2007-11-21 03:00:00


“이 다리는 우리가 이뤄 낸 성취 가운데 최고의 자리에 있을 겁니다.”

1964년 11월 21일 미국 뉴욕 스테이튼 아일랜드와 브루클린을 잇는 베라자노 대교(大橋)가 개통되자 로버트 왜그너 당시 뉴욕시장은 이렇게 말했다.

길이만 무려 1298m. 23만 km의 철선을 꼬아 만든 거대한 케이블이 다리 상판을 끌어올리는 모양의 현수교였다.

뉴욕의 현재 모습을 완성하는 마지막 거대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는 베라자노 대교의 개통식은 세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개통식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뉴욕타임스는 당시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태양이 빛나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밴드 연주에 축포가 메아리쳤고 인근 항구에서는 깃발이 나부꼈다. 수천 대의 오토바이로 베라자노 대교는 더없이 행복한 교통 혼잡을 빚었다.’

이날 베라자노 대교를 처음으로 건너는 영광은 22세의 청년 조지 스카펠리에게 돌아갔다. 그는 ‘첫 번째 주인공’이 되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일주일 전부터 베라자노 대교의 스테이튼 아일랜드 쪽 게이트에서 기다렸다. 결국 그는 파란색 캐딜락을 몰고 다리를 건너 50센트의 통행료를 낸 첫 번째 사람이 됐다.

베라자노 대교를 디자인한 것은 엔지니어였던 오스마 아만이었다. 그는 조지워싱턴 다리에서부터 베이욘 다리에 이르기까지 뉴욕의 주요 대교를 디자인했다. 베라자노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었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이 다리를 짓는다는 구상이 처음 나왔을 때 이름부터 논란이 됐다. 미국의 이탈리아역사학회는 유럽인으로서 뉴욕항과 허드슨 강을 처음 탐사한 것으로 알려진 이탈리아의 탐험가 조반니 베라차노의 이름을 붙이자고 제안했지만 이를 바꾸려는 시도가 잇따랐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된 뒤에는 케네디 대교로 바꾸자는 제안도 있었다.

2001년 9·11테러 때에는 다리가 강제 폐쇄되기도 했다. 테러범에게 납치된 비행기 한 대가 이 다리 바로 위를 지나 세계무역센터(WTC)에 꽂혔기 때문이다.

베라자노 대교는 개통 이후 4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뉴욕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지금은 뉴욕 마라톤의 출발점으로 더욱 유명해져 매년 한 차례씩 ‘더없이 행복한 교통 혼잡’이 빚어지는 다리가 됐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