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일 잘하는 정부’ 만들어 ‘민간 자율’ 춤추게 하라
《각 분야 전문가 55명은 차기정부의 주요 개혁과제 가운데 정부개혁을 교육개혁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꼽았다. 동아일보가 정치 행정 외교 안보 경제 교육 복지 등 각 분야 전문가를 선정해 이들로부터 받은 설문을 취합한 결과다.》
집권초 민간서 조직개편 계획 짜고 대통령이 집행해야
통일 외교 국정원 통합-홍보처 국내업무 폐지 바람직
인사위는 행자부로-청렴위는 법무부로 흡수 검토할만
전문가들은 정부개혁의 방향과 관련해 한목소리로 ‘작은 정부’를 제시했다. 노무현 정부가 지난 5년 동안 ‘일 잘하는 정부’를 표방하면서 ‘큰 정부’를 만들었지만 ‘폐해’가 많았다는 이유에서다.
현진권 아주대 교수는 “큰 정부는 필연적으로 시장을 간섭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규제 강화와 뇌물 거래 등 사회적 비용이 커진다. 큰 정부로 인해 인적 자원이 비효율적인 공공 부문에 배분돼 성장잠재력을 약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정부조직 축소=나성린 한양대 교수는 “작은 정부를 위해서는 정부 조직을 현재의 3분의 2 수준으로 축소하고, 공무원 수를 현재 정원의 10% 이상 줄여야 한다. 재정 규모와 조세부담률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20%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 교수는 “이런 정부개혁은 정부 관료가 스스로 하기 어렵기 때문에 민간단체가 개혁안을 짜고 대통령 직속으로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집행해야 한다”며 “정부개혁은 정권 초기에 해야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김동욱 서울대 교수는 공무원의 양적 감축과 질적 향상을 주문했다. 그는 “차기 정부에서는 중앙정부 조직과 인력을 슬림화하는 대신 국제적 수준의 정책개발과 정책운영을 위해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새롭게 충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 현재 400개가 넘는 정부의 각종 위원회를 대폭 축소하고 정부 외곽조직의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조직 통폐합과 대부처제=작은 정부를 위해서는 조직의 통폐합과 대(大)부처제로의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김영수 서강대 교수는 “급증하는 탈북자, 북핵 문제 등 남북관계의 상황과 구조가 과거와 달라졌기 때문에 이에 맞는 정부 구조가 필요하다”면서 “통일부 외교통상부 국가정보원 등 외교안보 분야 부처의 통폐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창원 한성대 교수는 조직 세분화에 따른 낭비 요소를 제거하고 부처할거주의로 인한 폐해를 극소화하기 위해 ‘대부처주의’로 가야 한다며 구체적인 통폐합 그림을 제시했다.
이 교수는 “현 정부에서 위상이 지나치게 강화된 통일부 기능을 축소해 국무총리 산하의 ‘남북관계조정처’로 개편하고, 공정거래위원회는 규제를 담당하는 규제개혁위원회와 합쳐서 ‘공정거래규제위원회’로 가야 기업의 부담이 줄어든다”고 강조했다.
김동욱 교수는 업무와 기능의 유사성을 이유로 각종 위원회가 유관 부처로 흡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인사위원회는 행정자치부로, 국가청렴위원회는 법무부로, 국가비상기획위원회는 국방부로, 국가청소년위원회는 문화관광부나 교육인적자원부로 흡수 통합되어야 한다는 것.
또 김 교수는 “사실상 교육정책과 고등교육 기능만을 담당하고 있는 교육인적자원부와 과학기술부의 통합이나 여성가족부와 보건복지부의 통합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남궁곤 이화여대 교수는 국정 전반에 관한 대변 역할을 맡으면서 언론통제 비난을 받고 있는 국정홍보처와 관련해 “글로벌 시대에 맞게 대외홍보처로 개편해 외국에 한국을 알리는 기능을 전담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간 참여가 필수=작고 효율적인 정부로의 개혁을 위해서는 민간의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이석원 서울대 교수는 “그동안 정부와 비정부 부문의 관계는 지원을 미끼로 한 일방적 통제 체제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차기정부에서는 정부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민간기관 대학 시민단체 등을 통제 대상이 아닌 국정 파트너로 인식하고 민간 부문과 경쟁을 통한 ‘협치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희준 이화여대 교수는 “공기업 민영화는 작은 정부 실천과 직결된다”면서 “우선 민간부문에 맡겨도 되는 금융 에너지 등의 분야는 민영화를 통해 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함께 작은 정부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