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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산책]김성근과 김호… 열정에 팬들은 즐거웠다

입력 | 2007-11-23 03:04:00


몇 달 전 일이다.

프로야구 SK 김성근(65) 감독이 대전의 한 호텔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 한 사내가 다가와 인사를 청했다. 김 감독은 팬이겠거니 하고 반갑게 인사를 받았지만 웬일인지 사내는 다소 어색해했다.

사내가 가자 자리에 있던 일행이 김 감독에게 귀띔했다. 프로축구 대전 시티즌의 김호(63) 감독을 모르시느냐고. 두 살 아래인 김호 감독이 김성근 감독이 왔다는 소식에 먼저 인사를 하러 왔던 것이다.

아차 싶었다. 이번에는 김성근 감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호 감독의 테이블을 찾아가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했다.

선수와 감독으로 스포츠계를 주름잡던 이들. 하지만 야구와 축구로 종목이 갈린 탓에 반백의 나이가 돼서야 우연한 첫 만남을 가진 것이다.

올해 프로야구와 프로축구는 이들 덕에 즐거웠다.

김성근 감독은 정규리그 1위, 한국시리즈 우승에 이어 코나미컵 예선에서도 일본 주니치를 꺾으며 ‘SK 시대’를 열었다. 김호 감독도 시즌 중인 7월 사령탑을 맡아 10위였던 팀을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며 ‘대전 돌풍’을 일으켰다.

김성근 감독은 한 기자회견에서 “김호 감독님은 대단하신 분이다. 그분이 좋은 성적을 거두니까 흐뭇하다”고 말했다.

베트남에서 전지훈련 중인 김호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이 얘기를 전했다. 김호 감독은 “김성근 감독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고맙다. 그분도 훌륭하신 분”이라고 답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동정하고 도움)의 마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김성근 감독은 재일교포 출신으로, 김호 감독은 고졸 출신으로 각각 지연과 학연이 뿌리 깊은 국내 스포츠계에서 ‘외톨이’였다. 하지만 이들은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결국 ‘정상’에 섰다.

쉽지는 않았다. 이들의 생활은 마치 고3 수험생과 같다.

김성근 감독은 호텔에서 룸서비스를 주로 이용한다. 레스토랑에 내려가는 시간 등이 아까워서다. 그는 밥 먹는 시간에도 수첩에 빼곡히 야구 기록을 적고 또 적는다.

김호 감독은 틈만 나면 고교, 대학, 실업 경기를 보러 승용차를 손수 몰고 전국을 돌아다닌다. 선수 발굴을 위해서다. 팀 관계자는 “감독님이 부임하신 후 하루도 쉬지 않으셨다”고 말했다.

며칠 전 첫눈이 내렸다. 하지만 두 감독에게 겨울은 없는 것 같다.

김성근 감독은 일본 고지에서, 김호 감독은 베트남 빈즈엉 성에서 선수들과 함께 땀을 흘리고 있다. 겨울을 잊은 두 노장이 내년 봄 어떤 명승부를 선사할지 벌써부터 설렌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