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즈노사할린스크 레닌광장에 서 있는 레닌 동상. 동상 옆 고구려 복장을 한 사할린 소녀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레닌과 고구려 복장은 민족의 공존을 상징한다. 사진 제공 산책자
◇레닌이 있는 풍경/이상엽 지음/308쪽·1만4000원·산책자
지금 러시아 10월혁명 90주년을 논한다는 건, 그 혁명의 영웅 레닌을 기억한다는 건 어쩌면 부질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레닌을 찾아갔다. 더 정확히 말하면 러시아 곳곳 자본주의 물결 속에 아직도 서 있는 레닌의 동상을 답사했다.
포토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러시아의 서쪽 끝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와 예카테린부르크, 우랄산맥을 넘어 서시베리아 노보시비르스크, 이르쿠츠크를 지나 동쪽 끝 사할린까지 1만 km가 넘는 먼 길을 지나며 곳곳에 서 있는 레닌의 동상을 카메라로 포착했다.
레닌의 동상을 찍고, 그 동상의 배경이 되는 삶의 풍경을 찍고, 동상 주변에서 펼쳐지는 러시아의 새로운 변화를 찍고, 지나버린 혁명의 시대를 회고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동상 사진이다. 스탈린의 동상은 거의 사라졌는데 레닌의 동상이 건재하다는 것이 이채롭다. 상트페테르부르크 핀란드 역 앞의 레닌은 대머리에 작달막한 키, 낡은 코트를 입고 손을 들어 무언가를 지시하고 있다. 모스크바의 레닌 동상 뒤로는 일본 기업 산요(SANYO)의 광고판이 선명하다. 이 밖에도 바이칼 호의 바람을 맞으며 춤추듯 서 있는 이르쿠츠크의 레닌 동상, 부랴트의 수도 울란우데의 소비에트 광장에 서 있는 레닌의 육중한 두상 등 그 동상의 모습과 주변 풍경은 참으로 다양하다.
때론 지독히 쓸쓸하고 때론 여전히 당당한 레닌의 동상 사진들이 매력적이다. 예기치 않았던 레닌의 동상과의 만남이 지나간 역사를 생각하게 한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