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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71년 美쿠퍼, 노스웨스트 여객기 납치

입력 | 2007-11-24 03:04:00


‘미드(미국 드라마)’ 열풍을 몰고 온 ‘프리즌 브레이크’에 찰스 웨스트모어랜드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항상 고양이를 안은 채 조용히 수감 생활을 하는, 과거가 알려지지 않은 노인이다. 주인공 마이클 스코필드는 그를 DB 쿠퍼로 확신하고 접근한다. 그가 숨겨 놓은 돈 때문이다. 쿠퍼가 어떤 인물이기에….

쿠퍼는 미국의 전설적인 하이재커(비행기 납치범)다. ‘전설’이 시작된 날은 1971년 11월 24일.

그날 오후 ‘댄 쿠퍼’라는 가명의 중년 남자가 포틀랜드 공항에서 시애틀행 노스웨스트항공 여객기에 올라탔다. 그는 비행기가 이륙하자 여승무원에게 쪽지를 건넸다.

‘가방에 폭탄이 들어 있다’는 내용이었다. 요구 사항은 두 가지. 20달러 지폐를 묶은 20만 달러와 낙하산 4개였다. 비행기가 착륙하자 쿠퍼는 항공사 측으로부터 돈과 낙하산을 챙긴 뒤 승객을 모두 풀어 줬다. 쿠퍼와 승무원들을 태운 비행기는 다시 이륙했다.

비행기가 워싱턴 주 남부 상공에 이르렀다. 쿠퍼는 돈 가방을 몸에 고정시키고 낙하산을 앞뒤로 하나씩 매단 채 차가운 밤하늘로 몸을 던졌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수색이 펼쳐졌다. 경찰은 잠수정을 동원해 컬럼비아 강바닥까지 뒤졌지만 낙하산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때 한 언론이 범인의 가명을 보고 ‘D B 쿠퍼’가 그의 본명인 것처럼 잘못 보도했다. 경찰은 이를 바로잡았지만 당시 많은 사람에게는 이미 ‘D B 쿠퍼’라는 이름이 각인됐다.

1980년에야 범인 추적에 단서가 될 만한 한 가지 흔적이 나타났다. 컬럼비아 강변에서 5800달러의 돈다발이 발견된 것이다. 일련번호 비교 결과 쿠퍼가 챙겨 간 돈으로 확인됐다.

FBI는 30여 년간 1000명이 넘는 용의자를 조사했다. 1972년에는 유타 주에서 50만 달러를 챙겨 낙하산으로 탈출하는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며칠 뒤 붙잡힌 범인은 쿠퍼로 지목됐지만 다른 인물로 확인됐다.

2000년에는 “남편이 죽기 직전 쿠퍼라고 고백했다”는 한 여인의 인터뷰가 잡지에 실려 유전자를 분석하는 소동을 벌였으나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그를 소재로 한 책, 노래, 영화가 잇따라 나왔다. 그를 ‘로빈 후드’처럼 추종하는 무리도 생겼다.

쿠퍼가 어디선가 호의호식하고 있을지, 아니면 낙하산으로 탈출할 당시 사망했을지 앞으로도 밝혀지지 않고 미궁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전설’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