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13세였던 미국인 소녀 메건 메이어는 ‘미국판 싸이월드’라고 불리는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 ‘마이스페이스’에서 조시 에번스라는 16세 소년을 알게 됐다.
그런데 에번스는 메이어와 사이버 교류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메이어에 대한 험담을 온라인상에 퍼뜨리기 시작했다. “넌 나쁜 인간이다. 사람들은 모두 널 증오한다”와 같은 구체적 근거없는 비방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를 본 다른 누리꾼들이 ‘메이어 비난’ 대열에 덩달아 가세하기 시작했다. 메이어는 이를 견디지 못해 자신의 생일을 얼마 앞둔 10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로부터 몇 주 뒤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조시 에번스라는 소년은 실존 인물이 아니었고 이웃에 사는 메이어 친구의 엄마가 소년행세를 했던 것이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엄마는 당시 자신의 딸과 사이가 틀어진 메이어가 딸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지 알기 위해 ‘조시 에번스’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접근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메이어의 부모는 이 이웃이 처벌받기를 원했지만 이 사건은 1년이 넘도록 형사 고발되지 않았다.
약 2주 전 이 이야기가 미국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자 ‘온라인 음해(陰害)’를 어떻게 단죄하고 또 예방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일부 누리꾼은 문제의 이웃을 ‘10대를 죽게 만든 사이코 가족’이라고 비난하면서 직접 단죄에 나섰다. 이들은 온라인상의 여러 단서를 활용해 일주일 만에 이들 가족의 이름과 직장, 전화번호까지 모두 찾아냈으며 이들이 사는 집을 찍은 위성사진까지 인터넷에 공개했다. 소년을 사칭한 여자의 남편은 얼굴도 공개됐다. 온라인 음해로 한 소녀를 자살에 이르게 한 장본인과 그 가족이 다시 온라인에서 ‘사회적 사망 선고’를 받은 것이다.
이 사건은 인터넷 강국(强國)인 한국 사회에도 결코 낯설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미 개인 정보 유출, 사칭 문제 등 인터넷의 심각한 부작용이 수없이 거론돼 왔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익명성을 이용해 ‘사법부의 정의(正義)’에 앞서 ‘군중의 정의’를 실현하려는 시도도 적지 않았다. 이 사건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크고 복잡한 온라인 공간을 가진 우리에게도 많은 숙제를 남겨 준다.
임우선 경제부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