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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포커스/최동주]한국의 새 기회 ‘아세안 통합’

입력 | 2007-11-27 02:52:00


올해로 마흔 살이 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의 10개국 정상은 며칠 전 지역공동체의 헌법 구실을 하게 될 아세안 헌장과 아세안경제공동체(AEC) 청사진에 서명했다. 저개발 지역 협력기구의 대명사처럼 불리던 아세안이 역내 산업과 노동 분업의 틀을 기반으로 새로운 경쟁과 협력의 시대를 열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현한 셈이다.

아세안에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아세안과 경쟁의 날개를 편 중국의 갈등 및 협력은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가져다주었다. 탈냉전의 시대 상황은 아세안 경제의 사활을 손에 쥔 화상(華商) 자본이 적극적으로 중국의 경제 도약을 뒷받침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홍콩 반환과 양안관계의 개선은 불붙은 중국 경제에 기름을 부었다.

중국이 성장하는 가운데 역설적으로 아세안 국가는 어려움을 겪었다. 세계총화상회의를 격년으로 주도한 싱가포르와 자원 부국인 브루나이를 제외한 회원국은 화상에게 집중된 국내 자본의 대거 이탈로 1990년대 초 이후 국내 투자에서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전력 공급과 수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통한 경제 발전을 모토로 내세운 메콩유역개발협력(GMS)은 수원지(水源地)인 중국의 방해와 간섭으로 늦어졌다. 태국이 주도하고 일본이 강력하게 자금 지원을 약속했던 이 프로젝트가 물거품으로 바뀌던 1993년 말 중국은 위안화 평가절하를 단행했다. 동남아에 대한 중국의 공격적 접근은 몇 가지 중요한 결과를 낳았다.

첫째, 세계 수출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던 아세안의 주력 국가에 큰 타격을 주었고 이는 태국과 인도네시아, 일본 자본의 지원으로 성장한 말레이시아 경제를 파탄에 이르게 했다. 둘째, 자국 자본의 유출을 우려한 아세안 주요 국가가 자국 자본의 중국 투입을 막는 다양한 법적 조치를 강구했고, 이는 중국과의 외교적 긴장을 조성했다. 셋째, 중국의 영향력에 더욱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인도차이나 3국과 미얀마를 새롭게 회원국으로 맞이해 정치적 협상력을 급속히 강화했다.

대표적인 개발도상지역 협력 기구로 기능했던 아세안은 지역다자협력기구가 어떻게 대내외적으로 기능해야 하는지를 보여 줬다. 아세안은 추가로 편입된 4개 국가에 집중적으로 투자했고, 정치적 혼란을 경험한 미얀마를 제외한 인도차이나 국가가 실제적인 협력의 파트너로 성장하도록 도왔다.

아세안 국가는 중국으로 유출된 국내 자본을 보완하기 위해 일본 외에 한국 및 대만 기업의 투자를 유도했고, 최근에는 중국 토종 자본의 유치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 일본이 주도하는 아시아개발은행 자금을 적극 활용했다. 협력과 갈등이 공존하는 동아시아 3개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아세안+3’을 주창해 범동아시아 국가 협력 틀의 구축을 주도하기도 했다. 아세안 헌장과 경제 청사진의 공표는 이런 노력의 결과이다.

하지만 난관도 예측된다. 우선 중국에 이어 인도라는 또 다른 경쟁 상대가 등장했다. 인권과 정치 거버넌스의 개선 그리고 지속 가능한 개발 등 국제사회의 커다란 흐름과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는 점도 과제다. 5억 명 정도인 역내 시장의 협소성을 극복하고 수출 경로를 다양화하는 등 시장 확대가 또 다른 관건이다.

한국에 아세안은 경쟁자라기보다는 시장 제공자이고 한편으로는 기술직 중심의 인적 자원 공급자이다. 한-아세안 자유무역협정(FTA) 초안에서 한국의 한류상품이 서비스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우호적 환경이 마련됐다. 이를 계기로 한국은 아세안 회원국과 갈등의 역사를 경험한 일본이나 중국과는 차별화된 접근 경로를 통해 아세안과의 실질적 협력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최동주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정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