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개봉된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영화 ‘데이 라잇’.
범인들이 탄 캐딜락 ‘STS’(사진)가 뉴욕 허드슨 강 아래를 관통하는 링컨터널을 과속으로 달리다 사고로 폭발이 일어나면서 터널이 붕괴된다는 내용의 재난 영화다. 사고의 원인을 제공하기는 했지만 STS의 강력한 가속력과 세련된 디자인이 인상적이었다.
11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성능과 디자인이 한층 업그레이드된 STS를 영화 속이 아니라 현실에서 다시 만났다.
시승한 STS는 V형 6기통 3564cc 엔진이 들어간 모델. 연료소비효율(연비)과 힘을 동시에 높여 주는 연료직분사형 엔진 덕분에 최고 출력 302마력, 최대 토크 37.6kg·m를 자랑한다. 기존 엔진과 배기량은 비슷하지만 출력이 47마력이나 높아졌다. 실제 시내 주행 연비는 L당 6km 안팎이었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한 결과 6.9초로 스포츠 세단의 수준이다. 최고 속도는 속도제한장치가 작동해 시속 210km까지만 낼 수 있다. 상위 모델의 4565cc V형 8기통 엔진이 부럽지 않았다.
다만 시원한 가속력을 얻으려면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아야 한다. 가속페달의 절반 정도까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끝 부분에서 출력을 급상승시키는 방식으로 세팅돼 있다. 가속페달을 이처럼 둔하게 세팅하면 차와 일체감은 조금 떨어지지만 승차감이 좋아지고 연비도 올라가는 장점이 있다. 주로 출력이 여유있는 대형 세단에서 쓰는 방법이다.
승차감은 미국 차 특유의 부드럽고 편안한 감각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면서 운전자가 스티어링휠을 돌릴 때 차체가 얼마나 민첩하게 반응하는지를 뜻하는 핸들링도 어느 정도 생각한 듯했다. 기존 미국 차와는 달리 느슨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시속 100km로 달릴 때 엔진의 회전은 1500rpm(분당 회전수)에 불과하고 외부 소음도 차단이 잘되는 편이어서 도로 위를 떠서 달리는 듯한 느낌을 줬다. 속도계를 수시로 보지 않으면 제한속도 위반 범칙금을 자주 내야 할 것 같았다.
외부 디자인은 강한 직선을 바탕으로 개성이 넘쳐 보였고 인테리어는 독일 차나 일본 차처럼 빈틈이 없는 수준은 아니지만 허술하지도 않았다. 재기를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는 GM(캐딜락의 제조사)의 노력이 헛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