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깊은 마포종점 갈 곳 없는 밤 전차, 비에 젖어 너도 섰고 갈 곳 없는 나도 섰다.’
1950년대 가요계의 스타였던 은방울자매의 ‘마포종점’은 당시 서울 시민의 애환이 담긴 전차에 빗대 노래를 불렀다. 그만큼 전차는 서울 시민의 일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서울 시내 전차는 1968년 11월 29일 마지막 운행을 마치고 모두 철거됐다.
1966년 10월 12일 종로구 세종로 지하보도를 건설한다는 이유로 세종로 쪽 전차 노선이 폐지된 뒤 단계적 철거가 이뤄지면서 마침내 이날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 서대문에서 종로 동대문을 거쳐 청량리에 이르는 전차가 개통식을 한 것은 1899년 5월 17일이었으니 칠순의 나이로 운명을 다한 셈이다.
전차의 전성기는 1920, 30년대. 서울 시내 거의 유일한 교통수단인 탓에 운영사인 경성전기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 줬다. 경성전기는 당시 경성시에 거액인 100만 원을 기부할 정도였고 시는 이 돈으로 부립병원(현 국립의료원)과 부민관(서울시의회 의사당)을 지었다.
대중교통 수단이다 보니 크고 작은 사고도 적지 않았다. 1929년 4월 22일 진명고녀 3, 4학년생 120명을 태운 전차가 전복해 88명이 다치는 참사가 터졌다. 당시 여고생은 대부분 상류층의 딸인 만큼 큰 파문을 일으켰고 경성전기의 사장이 일일이 피해자 가족에게 사죄를 하러 다닌 뒤에야 사태는 겨우 진정됐다.
1965년 말까지만 해도 전차는 서울 시민의 발이었다. 노선이 총 40km가 넘었고 하루 평균 운행 차량 대수는 2811대, 하루 평균 승차 인원은 44만928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전차는 계속 적자에 시달렸다. 1961년 9500만 원 적자에서 1965년 3억1500만 원으로 적자폭은 계속 늘어만 갔다. 그럼에도 전차 요금은 함부로 올릴 수가 없었다. 1957년 책정된 보통권 1회분 25원, 회수권 15회 200원에서 전혀 변동이 없었다. 더불어 노후한 차량도 문제였다. 1966년 서울 전차의 92%가 사용연한 20년을 훨씬 초과해 평균 사용연수는 34년을 헤아렸다. 또 시속 7km에 불과한 전차의 속도는 차츰 늘어나던 버스와 승용차 등을 가로막는 방해꾼이 될 뿐이었다.
최근 한국토지공사는 서울 송파신도시 건립 계획을 내면서 전차 부활 계획을 포함시켰다. 저렴한 건설비와 매연 발생 감소 등을 도입 이유로 들었다. 과연 서울 시내에서 다시 전차를 볼 수 있는 날이 올 것인지 궁금하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