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의 시신은 불이 난 다음 날 아침 무너진 공장 지붕과 철제 빔에 깔린 채 발견됐다. 화마(火魔)와 싸우려고 착용한 헬멧과 산소통은 완전히 녹았고 시신도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검게 타 버렸다. 그가 실종된 사실을 안 것은 오전 1시 50분경. 화재 현장에서 근무 교대하는 과정에서였다. 동료 소방관들은 잔불을 잡으며 밤새 그를 찾았지만 화재 현장은 너무 넓었다.
▷불이 난 것은 27일 오후 3시 반경. 햄과 소시지를 만드는 경기 이천시의 CJ제일제당 육가공 공장이었다. 동료 17명과 함께 맨 먼저 현장에 투입된 소방관은 소방 호스의 노즐을 잡는 관창수로 최일선에서 화염과 맞섰다. 그의 모습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것은 그날 오후 6시 반. 한 동료는 “산소통을 교체하기 위해 잠시 물러선 그의 방화복은 여기저기서 튄 식용유로 기름범벅이었다”고 또렷이 기억했다. 그러고는 잔불을 끄러 공장 안으로 들어간 그의 모습을 동료들은 보지 못했다.
▷그렇게 숨진 윤재희(29) 소방관은 내년 2월로 결혼 날짜를 잡아 두고 있었다. 피앙세는 인근 병원 응급실 간호사. 2년 전 119구급차에 환자를 싣고 응급실에 들렀다가 그곳에서 마주친 간호사였다. 숨지기 닷새 전 약혼녀의 웨딩드레스와 자신의 예복을 맞췄다. 전세금 대출을 받아 신혼집을 마련하기 위해 혼인신고는 미리 했고, 이달 초 그 집에 장판을 깔고 벽지도 발랐다. 가장 먼저 불길에 뛰어드는 용감한 소방관이라 해서 동료들이 ‘용짱’이라는 별명을 붙여 줬지만, 방화복을 벗은 그는 친근하고 곰살가운 이웃 청년이었다.
▷미국의 스모키 린이라는 소방관은 불에 갇힌 어린이 3명을 구하지 못하자 그 괴로움을 이기기 위해 ‘소방관의 기도’라는 시를 썼다. 그 몇 구절을 소개하며 고(故) 윤재희 소방관의 명복을 빈다. ‘제가 소명을 받을 때 신이여/아무리 거친 화염에서도/한 생명을 구할 힘을 주소서/너무 늦기 전에 어린애를 안고/공포에 떠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그리고 당신의 뜻에 따라/내 목숨을 드릴 때/당신의 손으로 내 아이와 가족을 축복해 주소서’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