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은 과연 단일 민족일까. 유전학적으로 하나의 민족이 누구인지 알려는 작업은 범죄 수사의 기본인 유전자(DNA) 검사를 거대한 스케일로 늘려 각 민족의 DNA를 비교하면 된다. 우리 모두가 ‘한아버님’의 후손이라면 유전형이 모두 같아야 한다. 나의 유전형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았고 우리 부모의 유전형은 선조로부터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20년 전 앨런 윌슨이란 학자는 세포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미토콘드리아의 DNA를 분석해 세계 모든 여성의 DNA가 16만 년 전 아프리카에 살았던 어떤 여성 한 명에게서 나왔을 것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이 DNA는 어머니로부터 딸에게만 전해지는 특성이 있어 모계를 추적하는 도구로 쓰인다. 현생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인데 이제는 정설이 됐다.
이전에 학자들은 ‘다지역 기원설’을 믿었다. 우리 민족은 한반도에 살던 구석기 문화를 만든 사람들의 후손이고 중국인은 중국 구석기 문화를 만든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식이다. 이 이론은 지금 DNA 검사 결과와 맞지 않아 폐기됐다.
남자가 되려면 Y 염색체가 필요한데 특성을 조사하면 아버지 쪽을 추적할 수 있다. 법원에서 친아버지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증거로 쓰인다. 이 방법으로 얻은 결과는 아프리카 대륙 바깥에 사는 모든 사람의 공동 할아버지가 6만 년 전 아프리카에 있었음을 시사한다. 당시 한반도에 현생인류는 살고 있지 않았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치면 2000대 전의 할아버지가 일가(약 200명으로 추정)를 이끌고 아라비아 반도를 거쳐 전 세계로 퍼져 지금 세상에 사는 65억 명의 후손을 만들었다는 시나리오다. 순수 유전학적 시각에서 보면 사해의 모든 인류는 형제다. 유전적으로 특별한 어떤 민족이 있다는 주장은 난센스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그렇게 다른가? 과거 6만 년 동안 살아온 환경이 달랐고 그 지역에 가장 잘 적응한 체질을 가진 사람만이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세계 각 지역 사람의 Y 염색체 유전형을 조사하면 남자의 이동을 추적할 수 있다. 몽골과 만주로부터 인도네시아에 이르는 동아시아인은 주로 O형인데 한국인 70%, 중국인 75%, 대만인 95%, 일본인의 약 절반이 O형이다. 중국인의 나머지 25%는 O형에 가까운 유전형을 갖는다. 한국과 일본에는 유전적으로 거리가 먼 C형과 D형이 많다. O형과 그에 가까운 형은 시베리아를 거쳐 들어왔고 C형과 D형은 말레이 반도를 포함해 남방 해안 루트를 경유했다고 추정된다.
유라시아 지역에 사는 사람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보면 알타이 산맥 서쪽 지역 거의 모든 사람의 유전형은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인의 유전형과 뿌리부터 다르다. 동북아시아 남자는 Y 염색체 O형이 압도적 주류이며 C형과 D형이 적다. 여자는 대부분 미토콘드리아 DNA 유전형 8가지 중 하나를 갖고 있다. 이 점에서 중국 북부, 한국, 일본 사람은 모두가 같다.
일정 지역 주민들의 유전형이 서로 비슷한 점은 세계 어디서나 그러한데,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은 서로 원수처럼 지내지만 유전적 차이는 거의 없다. 최근 공개된 국제 일배체형지도(HapMap) 사업 결과도 이런 결론을 뒷받침한다. 유전자의 미세한 차이가 질병의 발생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 연구인데 일본인과 북부 중국인의 체질이 거의 같음을 보여 줬다.
현생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나 세계 각 지역으로 어떻게 이동했는지는 현생인류 이동지도(https://www3.nationalgeographic.com/genographic)에 나와 있다. HapMap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웹사이트(www.hapmap.org)를 참고하기 바란다.
이홍규 서울대 의대 교수·내과학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