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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준 칼럼]한 시간의 발품, 그리고 5년

입력 | 2007-12-03 20:09:00


‘이달 중순엔 맑은 날이 많겠고, 기온은 평년(평균 영하 5∼9도)과 비슷하겠으며, 강수량은 평년(3∼20mm)보다 적겠음.’ 기상청이 어제 발표한 예보가 19일에도 맞는다면 대선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투표보다는 놀러나 가자는 사람이 많을지, 날도 괜찮은데 집에만 있느니 잠깐 찍고 오자는 사람이 많을지….

‘하늘’도 투표율의 변수가 되겠지만 선거 종반의 후보 구도와 판세가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보수(保守)는 완전 분열된 가운데 여권(與圈)이 후보 단일화를 이뤄 내면, 범여(汎與) 선호층이 심기일전해 대역전(大逆轉)을 꿈꾸며 투표소로 몰려갈지 모른다. 5년 전의 추억도 생생하다. 노무현 정몽준 단일화가 깨지면서 오전 투표까지 이회창 후보가 앞서 나가자, 노 후보 지지층은 휴대전화와 인터넷을 통해 서로에게 비상(非常)을 걸어 투표율을 끌어올렸다. 반면 이 후보 지지층은 오후에 많이 놀러 가 버렸다. 집념과 방심이 승패를 뒤집어 버렸다.

이번에는 이명박 이회창의 격돌이 여권에 어부지리(漁夫之利)를 안길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에 범우파(汎右派) 유권자들이 바빠질지 모른다. 10여 년간 선거 여론조사를 해 온 리서치회사 A 부장은 이번 대선 투표율이 2002년보다 떨어지지는 않을 거라고 내다본다. “호남은 낮아지겠지만 영남은 높아질 것이다. 연령층별 투표 성향도 중요한데 5년 전 27.8%이던 20대 유권자가 이번엔 21%로 줄었다. 이번엔 고연령층 투표율이 그렇게 낮지 않을 것이다.”

超人대통령은 없다

A 씨는 많은 데이터를 근거로 이런 관측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번에도 공상(空想)투표만 하고, 실제로 투표장에는 가지 않는 사람이 많지 않겠느냐”는 추측 또한 강하다. 어느 후보나 티가 많아 찍을 마음이 안 생긴다거나, 선거가 싱겁게 끝날 것 같다는 이유들이 열거된다. 우파 사이에선 “보수층은 좌파만큼 악착같지 못하다”는 말이, 좌파 사이에선 “이번 선거는 백약(百藥)이 무효”라는 말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1987년 직선제 대선이 부활된 뒤 투표율은 89.2%(1987년 노태우 당선) 81.9%(1992년 김영삼 당선) 80.7%(1997년 김대중 당선) 70.8%(2002년 노무현 당선)로 계속 낮아졌다. 이번에는 60%대가 될 거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물론 유권자의 절반이 기권하더라도 새 대통령은 탄생한다. 하지만 국민이 나라의 진짜 주인이 되려면 행동으로 주권(主權)을 행사해야 한다. 기권도 행동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선택으로부터의 도피이거나 방관이다. 유권자들이 ‘선택의 고통’을 감당해야 새 대통령의 잘잘못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민의(民意)를 결집해 보여 줄 수 있다. 세계 민주주의 역사는 참정권(정치참여권, 투표권) 확대를 위한 투쟁의 역사였음을 상기할 것도 없이, 민주주의는 선거 참여를 통해 완성된다.

국민은 어차피 새 대통령과 함께 5년을 동고동락(同苦同樂)할 수밖에 없다. 국민 팔자가 대통령 한 사람의 수완에 달린 것은 아니지만 최선(最善)이 못 되면 차선(次善)을, 그도 못 되면 차악(次惡)이라도 잘 골라야 국민 성공의 가능성도, 가족 행복의 가능성도 조금은 높아진다.

결함 없는 후보는 없다. 후보들은 국민에게 하늘의 별이라도 따 줄 듯이 하지만 ‘초인(超人) 대통령’을 기대한다면 실망만 커질 것이다. 민생의 모든 문제에 개입해 전천후 해결사가 되겠다는 후보보다 ‘정부가 하지 않아야 될 일’을 자제(自制)할 것 같은 후보가 시장(市場)을 통해 경제를 살릴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굿뉴스’ 더 만들 후보는?

대다수 국민에게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경제 재도약’이다. 앞으로 5년, 10년 안에 성장의 파이를 최대한 키워 놓지 못하면 당대(當代)는 물론이고 고령화가 급속해질 10년 뒤, 20년 뒤의 국민 삶은 더 힘겨워질 것이다. 이는 모든 세대의 발등에 떨어질 문제다.

또 하나의 시대정신이 있다. 국민통합이다. 지난 5년간 정권이 부채질한 국론 분열과 사회 갈등을 방치하거나 악화시키고는 국민 잠재력과 경쟁력을 결집할 수 없다. 그러면 경제 재도약도 멀어진다. 어느 후보가 가장 통합 지향적인 자질을 지녔는지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

3767만 유권자 모두가 한 시간의 발품을 팔아 자신들의 내일을 바꿀 선택에 나설 일이다. 보름 남았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