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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인의 법과 사회]정치 의혹마다 특검인가

입력 | 2007-12-04 03:05:00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성추문 스캔들을 파헤친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가 5년간 수백억 원에 이르는 예산을 쓰면서 1998년에 발표한 ‘르윈스키 보고서’의 결론은 의외로 간단하다. 대통령과 백악관 인턴 사이에 ‘부적절한 관계’가 있었다는 내용이다. 그러니 특검제의 모국인 미국에서도 무용론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정치권의 의혹 공방은 곧장 특검법으로 이어진다. 이면에는 검찰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권력분립 원리에 어긋난다는 비판 속에 도입된 우리 특검제도는 개별 사건마다 특검 설치를 위한 법률을 제정한다. 1999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사건 이후 다섯 번의 특검법이 시행됐지만 국민적 의혹을 시원하게 해소했다는 평가는 찾기 어렵다.

대선 정국의 회오리 속에 최대 쟁점으로 부각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BBK 의혹에 대한 정치공방이 계속되는 가운데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이 삼성그룹의 비리를 폭로함으로써 여섯 번째 특검을 맞이한다. ‘삼성비자금 의혹 관련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에 명시된 수사 대상은 대통합민주신당이 주장한 삼성그룹의 지배권 승계와 비자금 불법 로비에 한나라당이 주장한 2002년 대선자금 및 최고 권력층에 대한 로비자금이 포함된 정치적 타협의 결과다. 수사 대상이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광범위하여 위헌 논란을 안고 있다.

불법 로비와 당선 축하금이 사실이라면 대한민국은 삼성공화국이 아니라 부패공화국으로 전락한다. 불법적인 지배권 승계가 사실이라면 삼성그룹의 존립 자체가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인간 사회의 건전한 상식이 통하는 만남이 불법 로비가 되어서는 안 된다. 회계처리나 전환사채의 발행 과정에서 아무리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일을 저질렀어도 위법 행위가 없으면 사법처리의 대상이 아니다.

특검이 시작되면 그간의 수사 결과를 이첩해야 하는 검찰도 매우 당혹스러운 상황에 처한다. 신임 총장은 검찰의 흔들림 없는 수사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수사가 국민의 법 감정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에 검찰의 고민이 깊어 갈 것이다.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건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삼성이 하면 다릅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을 뛰어넘어 세계로 향한 자부심의 표현이다. 애니콜은 이제 지구촌을 휘감는 거대한 상징이다. 현대차가 해마다 노사 갈등으로 홍역을 치르지만 삼성은 무노조 노사협력의 새로운 모델을 창출한다. 하지만 2000명의 박사군단이 창출한 세계 제일의 품질에도 불구하고 소유와 경영은 아직도 우물 안 개구리 수준에 머물러 있다.

에버랜드 사건도 행위의 위법 여부를 떠나 탈법적인 상속이 문제의 핵심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와 같은 세계적 기업인이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에 따라 21세기적인 사회적 헌신과 봉사를 실천하는 와중에 터진 스캔들은 대한국민의 자랑스러운 기업 삼성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 준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특검으로 사기업을 묶어 둘 수는 없다. 특검의 장기화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특검은 속전속결로 시원한 단비를 내려 주길 기대한다.

대선이 불과 2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대선 후보에 대한 인물이나 정책에 대한 검증은 오간 데 없고 의혹만 온 세상을 짓누른다. 신당은 이명박 후보에 대한 특검법도 발의할 모양이다. 하지만 특검이 정치적 공세의 수단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산업화 민주화 과정을 온몸으로 체험한 국민은 정치인과 재벌의 유희에 지쳐 있다. 이제 국민은 의혹과 정쟁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 한다.

성낙인 서울대 교수·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