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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국양]추락하는 교육경쟁력

입력 | 2007-12-04 03:05:00


며칠 전 모임에서 대기업 연구개발을 책임지는 임원에게서 “거, 대학에서 교육 좀 잘하시오”라는 질책을 들었다. 새로운 제품 개발 아이디어를 내 보라고 신입사원들에게 요구했더니 인터넷에서 남의 아이디어를 조합해 가져올 능력은 있는데 자기 혼자서 생각할 능력은 전혀 없다는 이야기였다.

우리 대학 선생도 비슷한 일을 자주 겪는다. 입시 면접에서 단답형이 아닌, 정답이 없는 창의력을 요구하는 질문을 하면 여러 학생이 학원 선생님이 가르쳐 준 똑같은 답을 한다. 대학 수업에서 어려운 숙제를 내면 여러 학생이 인터넷을 뒤져 똑같은 답을 내는 경우를 본다. 우수한 학생마저 혼자 생각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말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2006년 전 세계 15세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제학업성취도비교(PISA) 중에서 과학이해력 부문의 국가 순위가 최근 발표됐다. 한국은 2000년 1등, 2003년 4등에서, 2006년에는 11등으로 떨어졌다. 우리 사회를 선도하는 영재의 수월성은 물론 평균 교육경쟁력마저 나빠졌다는 증거이다. 시험을 실시한 학교가 잘못 정해졌거나 통계처리에 오류가 있을까 하여 3년 전 보고서를 꼼꼼히 읽어 보니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

한국의 정보통신기술 기반이 발전하고 학생의 휴대전화 인터넷 및 PC게임 사용이 증가한 결과 15세 학생의 학업성취도가 떨어진 것 아니냐는 진단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진다. 이는 일본이 2등에서 6등으로 떨어진 결과를 통해서도 공감이 된다. PISA 결과에 근거해 초중등 교육은 항상 세계 최상이고 대학경쟁력만이 문제라는 주장도 이제는 받아들일 수 없게 됐다.

많은 사람이 한국의 교육경쟁력은 제도나 교육환경의 우월성보다 6·25전쟁 중 부산으로 피란을 가서도 천막을 치고 수업을 하던, 우리 부모들의 교육열로 유지됐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요즘은 어려서부터 학원에서 주로 학습하고, 학교에서는 잠이나 자며, 공교육이 붕괴되고 교육의 하향평준화가 계속된다. 교과 내용을 3, 4년 먼저 배우는 선행학습은 과학적 호기심을 키워야 하는 어린 학생에게는 정말 나쁜 교육 방법이다.

특목고 진학 공부를 초등학교 5학년부터 시작하고, 과학고에서 이공계 학과 진학보다 의대 치대 한의대 계열 진학자가 날로 증가하는 현상은 국력의 낭비이다. 대학교수도 이해하기 힘든 대학입시 제도와 이공계는 물론 사회과학에서 사용되는 심화 미분·적분을 배우지 않고도 대학을 들어올 수 있게 만든 교과과정 또한 문제가 있다. 수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나서서 아무 말 하지 않는 지식층에도 많은 책임이 있다.

2000년 3등, 2003년과 2006년 PISA 결과에서 1등을 한 핀란드 교육의 성공은 우리에게 교훈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핀란드는 우리와 유사한 교육제도와 우리 못지않은 교육열을 바탕으로 1970년대에 두 번에 걸친 교육개혁을 단행했다. 그 후 교실의 수업 분위기가 확립됐고 학생 개개인의 학업성취도에 따른 교육 프로그램이 도입됐다. 이들은 교원의 양성, 재교육, 대학원교육, 보수 향상 등 교육에 대한 투자가 미래 핀란드의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교육도 이제는 변해야 하지 않을까? 새로운 교육정책이나 교육과정은 많은 학생을 실험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학계에서 여러 차례 확인하고 작은 집단에서 시범 실시해 실패를 경험한 후 적합하다는 판단이 선 다음에 시행하는 지혜를 가져야겠다. 미국 GE사 잭 웰치 회장이 한 ‘영리하게 실패하는 법을 배우라’는 말이 생각난다.

국양 서울대 연구처장·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