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그 상원의원 폭로 이어 라이스도 구설수
“타고난 성향” 연예인 커밍아웃엔 우호적 시선
“래리 크레이그(62) 상원의원이 동성애자라는 소문은 워싱턴 정가에선 수없이 들어 온 얘기다. 공항 화장실 성추문이 터졌을 때 정작 정가 사람들이 궁금해한 것은 ‘왜 그렇게 쉽게 유죄를 인정했을까’라는 점이었다.”
최근 기자가 만난 미국 정가 소식통의 말이다.
아이다호 주 출신 크레이그 의원이 올해 6월 11일 한 공항 화장실에서 동성애 구애를 하려다 경찰에 체포된 뒤 바로 유죄를 인정했다는 사실이 8월 말 뒤늦게 보도되자 많은 미국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얼마 뒤 크레이그 의원은 “지역구에서 발행되는 신문이 8개월째 나의 성적(性的) 기호를 문제 삼으며 뒷조사를 해 왔다”며 “법정에서 논란을 벌이면 그 신문의 ‘마녀사냥’에 재료를 줄 것이 걱정돼 그냥 ‘유죄’라고 하고 덮어두고 싶었다”고 해명했다.
그가 말한 신문인 ‘아이다호 스테이츠먼’은 3일에도 크레이그 의원과 관련된 폭로 기사를 실었다. 그와 성관계를 가졌거나 구애를 받은 적이 있다는 4명의 남성이 실명으로 등장했다.
지난주에도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동성애자’라는 타블로이드 주간지의 ‘믿거나 말거나’식 보도에 수십만 건의 댓글이 달렸다.
미국 사회에서 동성애 스캔들은 지도급 인사의 권위와 명예에 결정적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손쉬운 도구로 꼽혀 왔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후보로 나섰던 1994년 텍사스 주지사 선거 당시 부시 진영 선거 참모였던 칼 로브 전 백악관 고문은 ‘현직 여성 주지사는 동성애자’라는 소문을 퍼뜨려 큰 타격을 입혔다.
그러나 미국 사회의 다른 한편에선 동성애자의 커밍아웃이 자연스레 이뤄지고 있다. “할리우드에 돌을 던져 보라. 커밍아웃한 동성애자가 맞지 않을 확률은 제로”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1997년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한 여성 코미디언 겸 배우인 엘렌 드제너러스는 그 뒤 아카데미상과 에미상 사회자가 됐고 현재는 자신의 이름을 딴 유명 토크쇼를 진행하고 있다.
조지워싱턴대의 한 교수는 “미국 사회엔 이성적으론 동성애를 문제 삼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뭔가 추한 것으로 여기는 이율배반이 혼재돼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