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로슬린연구소는 1997년 2월 23일 ‘복제양 돌리’가 태어난 지 7개월째로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고 발표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돌리는 ‘포유동물’로는 처음으로 생식이 아닌 체세포의 유전자를 핵을 제거한 난자에 주입해 태어나 ‘신의 영역’이던 생명 패러다임을 바꿨다.
따라서 돌리에 대해 초기에는 ‘복제 인간’ 출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각국이 인간 복제 방지를 막기 위한 법 제정에 나섰다. 지금처럼 줄기세포 연구를 통해 질병 치료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것이라는 생각은 뒤에 본격화했다.
로슬린연구소의 이언 윌머트 박사팀이 돌리를 출생시키는 데 가장 핵심 기술 중의 하나는 ‘세포 굶기기’(빈영양화·貧營養化)였다.
체세포에서 유전자를 추출해 핵을 제거한 난자에 넣는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유전자 추출. 왜냐면 체세포는 끊임없이 세포 분열을 계속하고 있어 정지 상태의 유전자를 빼내기가 곤란했던 것. 윌머트 박사팀은 체세포의 영양을 조절해 빈영양화하면 세포 분열 속도가 늦어지거나 멈추는 것을 발견했다. 이 기법은 ‘돌리를 출생시킨 수십 가지 특허 기술’ 중 으뜸으로 꼽혔다.
돌리 이후 최근까지의 줄기세포 연구는 돌리를 출생시킨 기술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복제에 성공한 포유동물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줄기세포 배양 기술이 늘어난 것 정도였다.
그런데 지난달에는 돌리에 버금가는 획기적인 기술이 성공했다. 일본 교토대와 미국 하버드대 줄기세포연구소는 각자 독립적인 연구를 통해 난자가 아닌 체세포 자체를 유전자 정보 조작을 통해 원형줄기세포로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
유전자 정보만 조작하면 체세포가 마치 수정란처럼 모든 기관과 조직으로 분화될 수 있는 초기 단계의 세포(원형줄기세포)로 되돌아가게 된 것이다. 이를 ‘인공만능세포’ ‘유도다기능줄기세포’ 등으로 부른다.
‘체세포 되돌리기’는 난자를 쓰지 않는 점에서 돌리 이후 가장 획기적이다. 돌리식은 많은 난자를 소모해야 하고(돌리 출생에도 난자 277개가 쓰였다), 실험 후 난자를 폐기하다 보니 생명을 버린다는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이런 문제는 일거에 해소됐다.
다만 조작된 유전자를 주입하는 과정에서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등의 과제가 남았다.
하지만 ‘체세포 되돌리기’는 인체 질병 치료에 필요한 장기나 기관 등을 분화 배양해 이식하는 시대가 올 수 있음을 더욱 뚜렷하게 보여 줬다.
6년생 암양의 젖샘 체세포에서 뽑은 유전자로 태어난 돌리는 새끼를 낳는 등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돌리는 이미 ‘6년’이라는 나이를 안고 태어난 것으로 밝혀졌으며 2003년 2월 ‘늙어’ 안락사됐다.
돌리 이후 10년간을 보면 앞으로 10년 후 어떤 기술이 나타날지 짐작하기 쉽지 않다.
생명과학 기술은 투자에 비해 그 효과는 무제한에 가깝다. 인류 건강에도 기여하고 전 세계 시장의 독점도 가능하다. 우리가 황우석 교수 파동 등으로 멈칫하는 사이 외국에서 생명과학의 새로운 이정표들이 쓰이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제2, 제3의 돌리’가 우리 과학에 의해 태어날 수 있도록 지지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 같다.
구자룡 국제부 차장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