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평 연대 무소속 이회창 후보(왼쪽)가 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민중심당 당사에서 자신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며 후보직을 사퇴한 심대평 국민중심당 대표와 악수를 하고 있다. 신원건 기자
《무소속 이회창 후보가 3일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와의 단일화를 성사시키면서 대선 후에도 당락과 관계없이 독자 노선을 걷겠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이에 앞서 이 후보는 1일 본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대선 후에 우리 정치를 주도하고 새롭게 시대를 여는 주도세력으로서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며 대선 결과와 무관하게 정치를 계속할 뜻을 처음 밝혔다.》
독자노선 천명… 이명박과 단일화 물건너가
대선 실패하더라도 총선 이후 ‘제1 야당’ 겨냥
BBK 미풍에 그치면 ‘脫한나라 세결집’ 한계
이 후보는 3일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해 유세 중 “이제 국민을 향한 국민의 보수대연합이 첫발을 디뎠다. 이 나라의 운명을 맡을 주도세력이 오늘 시작됐다. 역사상 처음으로 경천동지할 변화가 여러분 앞에 펼쳐질 것이다”고 호언했다.
▽‘대선 패배해도 제1야당 구축’=이 후보의 일차적인 목표는 한나라당과 별도의 보수세력을 결집시켜 이번 대선에서 승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선에서 지더라도 심 후보 등과 신당을 창당해 내년 4월 총선 등에 대비하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이 후보는 이날 심 후보와의 단일화 기자회견에서 “(심 후보의 기호) 5번과 (나의 기호) 12번을 합치면 17번이 된다. 그래서 이번 17대 대통령이 될 것”이라며 “보수연합의 정치세력을 키우기 위해 창당하는 문제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로의 단일화엔 응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 발언이다.
게다가 이 후보는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해 정권 교체가 어려워지는 상황은 아예 상정하고 있지 않다. 이 후보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정권 교체가 불가능한) 그런 상황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못을 박았다.
따라서 대선 구도가 ‘이명박-이회창-정동영’의 3강(强) 구도로 변하더라도 이명박 후보와의 단일화는 고려 대상이 될 수 없다.
촬영 : 신원건 기자
이 후보는 1일 본보 인터뷰에서 “어차피 강물은 흘러 바다에서 만난다”며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의 연대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심 후보 측 핵심 관계자는 3일 “박 전 대표가 결국 우리와 함께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후보의 속내를 잘 아는 한 인사는 “이 후보는 대선에서 한나라당에 패배하더라도 내년 총선에서 약진해 제1야당을 할 생각을 하고 있다”며 “대선 출마 때부터 예정된 수순”이라고 말했다.
▽성사 가능성=이 후보가 자신의 구상대로 충청권에 기반을 가진 심 후보 및 대구·경북에서 높은 지지를 받는 박 전 대표와 강한 연대를 맺을 경우 대선 당락에 관계없이 창당을 해 독자적으로 4월 총선을 치르는 게 가능하다는 평가가 많다.
국민중심당이 이날 “한나라당 이방호 사무총장이 전날 기자들에게 ‘(국중당이) 구멍가게 지분을 갖고 장사하면서 걸맞은 값을 불러야지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면 장사가 되겠느냐’고 말한 것은 한나라당의 오만불손이며 충청 비하”라고 성토한 것도 대선과 총선을 ‘충청 정서’를 바탕으로 치르겠다는 전략의 일단을 드러낸 것으로 보는 평가도 있다.
여기에 만약 민주당을 탈당한 조순형 의원이 가세한다면 ‘깨끗한 정치세력의 출현’이란 명분도 얻을 수 있다. 이 후보 측은 내심 조 의원이 캠프에 합류해 지지를 해 주길 기대하고 있으며, 민주당 경선에서 조 의원을 도왔던 인사들이 최근 이 후보 캠프를 자주 드나들고 있다. 또 열린우리당을 탈당했던 김혁규 전 의원이 조만간 이 후보 지지를 선언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BBK 주가조작 사건에서 이명박 후보 관련 의혹이 상당 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날 경우 박근혜 전 대표가 이회창 후보 측으로 돌아서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 경우 이 후보와 심 후보의 연대도 큰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충청권에 국한된 지지로는 4월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후보 캠프 내에선 향후 대선 구도가 ‘BBK 사건의 여파→박 전 대표의 이회창 지지→한나라당 탈당 사태→세력 결집’으로 이어지길 기대하는 심리가 팽배해 있다. 이 후보는 이날 MBC라디오에 출연해 “만일 BBK 사건이 진실이라고 밝혀지면 그것은 아주 결정적”이라고 말했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촬영: 정영준 동아닷컴 기자
▼국중당 선거보조금 15억은 어떻게▼
선관위 “반납할 필요는 없어”
당 “기탁금 등으로 모두 지출”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가 3일 무소속 이회창 후보로의 단일화를 선언하면서 후보직을 사실상 사퇴했지만 후보등록 후 국중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받은 선거보조금 15억919만여 원은 반납하지 않아도 된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선거보조금은 정당에 지급한 것이므로 후보의 사퇴 여부와 관계없이 반납할 필요가 없다. 다만 해당 정당 후보의 선거용도 외에 사용이 불가능하므로 다른 당 또는 무소속 이회창 후보를 위해서는 쓸 수 없다”고 말했다.
국중당이 이미 선관위에 제출한 후보기탁금 5억 원은 돌려받을 수 없다. 후보기탁금은 납부하는 순간 국고에 귀속이 됐으므로 후보 사퇴 여부에 관계없이 반납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선관위 설명. 그렇다 해도 국중당은 심 후보의 ‘반짝 출마’로 10억 원을 버는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
국중당 권선택 사무총장은 “15억 원의 선거보조금으로 후보기탁금 5억 원을 충당했고, 나머지 10억여 원은 포스터 제작, 유세차량 대여 등으로 이미 모두 썼다”고 말했다.
한편 중앙선관위는 정당 소속인 심 후보가 무소속 이 후보를 위한 지지 유세를 하는 게 선거법 위반인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