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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로 연명하던 阿말라위, 리더십이 녹색혁명 꽃피웠다

입력 | 2007-12-04 03:05:00


2년만에 식량수출국으로

무타리카 대통령 英-유럽 해법 거부

비료보조금-개량 종자로 변신 성공

굶주림에 시달려온 나라를 2년 만에 식량 수출국으로 변화시킨 빙구 와 무타리카(사진) 말라위 대통령의 리더십이 주목받고 있다.

아프리카 동남부의 말라위는 2005년만 해도 인구 1300만 명 중 500만 명이 국제사회의 식량원조로 연명했다. 그러나 이해 120만 t에 불과했던 식량 생산은 이듬해인 2006년 270만 t, 올해는 340만 t으로 껑충 뛰었다. 지금은 아프리카 남부에서 세계식량계획(WFP)에 옥수수를 가장 많이 파는 나라가 되었고 이웃 짐바브웨에도 매년 수십만 t을 수출하게 됐다.

식량 생산량이 불과 2년 사이 3배로 늘어난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3일 “말라위의 비결은 ‘비료’라는 단 하나의 단어에 있으며 이 사실이 아프리카 기근 정책에 큰 교훈을 준다”고 보도했다.

이 ‘비료’라는 말 뒤에는 2004년 취임한 무타리카 대통령의 결단이 숨어 있다.

세계은행은 1980년대에 원조를 무기로 말라위에 국가 비료보조금 제도를 철폐하라는 압력을 넣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도 세계은행의 편을 들었다.

아프리카에서 농촌에 비료를 보조하면 식량 대신 돈 되는 작물만 재배하게 되며 보조금이 시장경제 확립을 방해한다는 런던대 경제학자의 주장이 이러한 정책을 뒷받침했다. 말라위의 농민들은 껑충 뛴 비료값을 감당하지 못해 고갈된 땅에 옥수수를 심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무타리카 대통령은 취임 이듬해인 2005년 “이제 다른 나라에 가서 식량 구걸을 하지 않을 것이며 서방이 준 해법을 따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국가 비료 보조금제도를 과감히 도입하고 개량종자 보급과 농민 교육에 총력을 기울였다. 곧 식량 생산이 늘어났고 말라위 국민은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말라위 농민들이 환호하자 비로소 서방 경제학자들도 말라위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한 국제 조사팀은 “최근 비가 잘 내리기도 했지만 국가 비료보조 정책이 식량 증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2002년부터 말라위에 1억4700만 달러어치의 식량을 지원했던 미국은 서방의 충고를 따르지 않은 무타리카 대통령의 새 정책에 한 푼도 도움을 주지 않았다. 과거 식민지 종주국이었던 영국은 지난해 고작 800만 달러를 지원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