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호 한국농구연맹 경기위원장은 요즘도 연패 얘기만 나오면 “두 번 다시 떠올리기 싫다”며 손사래를 친다.
박 위원장은 동양 감독 시절인 1998∼99시즌 세계신기록감인 32연패를 경험했다.
당시 동양은 1998년 11월 22일 대우전에서 이긴 뒤 연패의 터널에 들어가 무려 석 달여 만인 이듬해 2월 28일 나산전에서야 비로소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연패를 하는 동안 박 감독의 쓰라린 속이야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구단 직원들은 틈나는 대로 연고지 대구 팔공산 갓바위에 올라가 108배를 올렸다.
공교롭게도 박 감독은 여자프로농구 국민은행에서 지휘봉을 잡던 2001년 겨울리그 때 국내 여자 최다인 25연패를 기록 중이던 금호생명에 패한 적이 있다. 박 감독은 연패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연패를 끊은 금호생명 이병국 감독에게 따뜻한 악수를 건넸다.
지난 주말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왔다. 11연패에 허덕이던 모비스가 오리온스를 9연패로 몰아넣으며 이긴 것이다. 거의 한 달 만에 승리를 맛본 유재학 모비스 감독은 “충희 형 얼굴이 하도 안돼 보여 좋은 티도 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유 감독은 침체된 분위기를 되살리기 위해 선수들과 회식을 하기도 하고 단골 식당까지 바꿔 봤다. 접전 끝에 지는 경기가 많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2% 부족할 때’라는 음료를 사서 선수 전원과 ‘원샷’을 외치며 들이켰다. 하긴 연패를 끊을 수만 있다면 무엇을 못 마실까.
여자 농구에서는 신세계가 최근 8연패의 수렁에서 헤매고 있다. 신세계 역시 경기 막판까지는 시소게임을 벌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뒷심 부족을 되풀이하고 있다. 성적이 좋아지면 기르겠다던 정인교 신세계 감독의 빡빡머리는 좀처럼 길어질 줄 모른다.
연패가 길어질수록 감독의 시름은 깊어만 간다.
그렇다고 사령탑이 흔들린다면 선수들은 더욱 자신감을 잃고 패배 의식에 사로잡히기 마련이다.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가도 겉으로는 웃어야 하는 감독이란 자리는 그래서 더욱 힘들어 보인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