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가 가진 건 눈밖에 없다.”
동시대를 살았던 인상파 화가 폴 세잔의 말처럼 클로드 모네는 가난한 화가였다.
1840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모네는 가난한 식료품상의 골칫거리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이 착실하게 가게 일을 돕길 바랐지만 화가가 되고 싶은 모네는 그림만 그려 댔다.
가난 탓에 제대로 미술 교육을 받지 못한 모네의 갈증을 풀어 준 건 인상파의 선구자로 불리는 외젠 부댕이었다.
그림에 소질을 가진 열일곱 살 소년을 만난 부댕은 “즉석에서 그린 작품은 아틀리에 작품이 갖지 못하는 강렬한 힘과 생명력을 갖고 있다”며 야외에서 유화를 그려 보라 권했다.
그 뒤 모네에게 자연은 그 자체로 화실이 됐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법을 배웠고 빛에 눈을 떴다.
‘빛의 화가’ 모네의 탄생은 그렇게 시작됐다.
모네는 시간과 날씨 계절에 따른 빛의 변화를 쫓아 매 순간 모습을 바꾸는 자연을 화폭에 담았다. 자연 그대로가 아닌 눈에 투사된 자연의 모습이었다.
“나는 나의 눈에 한정된 표현만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눈에 보이는 세계에 대한 집착은 모네의 철학이었다.
모네는 1866년 ‘녹색 드레스의 여인’으로 살롱전에서 호평을 받으며 자신의 이름을 알렸지만 여전히 가난했다. 생활고에 허덕이다 투신자살까지 시도할 정도였다. 전통 화법을 버린 그의 그림은 인기가 없었다.
1874년 모네가 전시회에 출품한 ‘인상-해돋이’는 한 비평가로부터 ‘인상주의’라는 조롱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모네는 오히려 자신의 화풍을 인상주의로 정의하고 ‘빛은 곧 색채’라는 신념에 충실했다.
그는 매일같이 수십 장의 캔버스에 빛의 효과를 포착해 담았고 그 노력은 ‘루앙 대성당’ ‘런던 국회의사당’ ‘수련’ 등의 연작에서 천변만화의 색조로 표현됐다.
모네는 1926년 12월 5일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인상주의 신념에 충실했다. 한때 그를 궁핍으로 몰아넣었던 그 신념은 나중에 빛을 발했다. 미술계는 모네의 위대한 눈의 세계가 빛의 시대를 열었고 현대 미술에 새로운 길을 열어 줬다고 평가한다.
그래서 세잔은 덧붙였다. “그러나 얼마나 위대한 눈인가.”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