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분쟁에 시민단체가 개입하면 분쟁이 평균 1년 이상 길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단국대 분쟁해결연구센터 임재형 연구교수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 ‘시민단체의 개입이 분쟁기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경험적 분석’에 따른 것이다.
한국의 시민단체는 그동안 공익을 대변하고 분쟁을 합리적으로 해결한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아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시민단체가 정책을 지체·포기시킴으로써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시민단체 개입하면 분쟁 장기화=이 보고서에 따르면 1990∼2005년 한국에서 발생한 공공분쟁은 215건이었다.
이 중 시민단체가 당사자나 제3자(조력자)로 개입한 분쟁은 절반에 가까운 107건으로 시민단체가 개입하지 않은 분쟁보다 평균 분쟁기간이 391일 이상 길었다.
‘새만금사업’이나 ‘미군기지의 평택 이전’과 같이 시민단체가 직접 분쟁의 당사자가 된 경우는 더 길어져 시민단체가 개입하지 않은 분쟁보다 평균 529일 이상 오래 지속됐다.
그러나 시민단체가 조력자로 개입했을 때는 당사자의 경우나 개입하지 않았을 때보다 분쟁이 평균 167일 이상 단축돼 개입의 성격에 따라 분쟁기간이 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단체가 공공분쟁에 개입할 경우 분쟁이 끝나는 방식에도 차이를 보였다.
시민단체가 개입한 분쟁은 그렇지 않은 분쟁에 비해 입법, 법원 판결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 반면 협상, 자진 철회 등 당사자 해결 방식은 적었다.
시민단체가 개입한 분쟁은 법원 판결까지 간 경우가 18건인 데 비해 개입하지 않은 분쟁은 4건에 그쳤다. 협상으로 해결된 경우는 시민단체가 개입한 분쟁은 13건인 데 비해 개입하지 않은 분쟁은 35건에 이르렀다.
▽강도 셀수록, 가치 충돌할수록 빨리 끝나=강도가 강할수록 분쟁은 빨리 해결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분쟁이 일어나는 동안 하루에 집회 참가자가 1명 늘어날 때마다 분쟁 기간은 0.22일 줄어들었다.
이에 대해 임 교수는 “투쟁의 강도가 세지면 정부 등 분쟁의 상대는 압박을 느끼고 요구를 빠르게 수용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라크 파병’, ‘전시작전권 전환’, ‘맥아더 동상 철거’ 등 가치·이념이 충돌하는 분쟁은 이익이 충돌하는 분쟁보다 평균 357일 이상 빠르게 해결됐다.
이는 가치분쟁이 초기에는 국민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지만 분쟁의 결과가 이해관계에 직접적 영향을 주지 않아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지며 자연스럽게 소멸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당사자가 아닌 조력자로 개입해야”=임 교수는 시민단체가 개입할 경우 분쟁이 길어지는 원인에 대해 시민단체의 성장배경과 가치지향성을 지적했다.
임 교수는 “시민사회가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민단체는 국민에게 자리매김하기 위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분쟁이 해결될 때까지 끌고 가는 모습을 보여 줬다”며 “시민단체는 분쟁에서 접점을 찾기 어려운 사회적 모순을 언급하거나 ‘환경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원칙주의를 견지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의 시민단체는 그동안 시민의 자치 역량을 키우고 분쟁을 조정하는 역할보다 주로 분쟁의 당사자로 개입해 왔다”며 “시민단체가 전문성을 증대시켜 분쟁 해결의 조력자로 참여함으로써 분쟁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