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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서도 살아남자” 각 부처 조직개편 물밑경쟁

입력 | 2007-12-05 03:02:00

대통령 선거를 보름 앞두고 각 정부 부처는 차기 정부가 들어선 뒤 있을 수 있는 정부 조직 개편에 대비해 내부적으로 대책반을 구성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재정경제부 건설교통부 환경부 노동부 등이 모여 있는 정부과천청사. 동아일보 자료 사진


《4일 서울 중구 장충동 ‘만해 NGO센터’에서 시민단체인 ‘행정개혁시민연합’ 주최로 열린 ‘차기 정부 조직개편 토론회’장. 행정학자, 시민운동가 등 관련자들과 함께 정부 각 부처 공무원들로 가득 찼다. 정부 조직을 총괄하는 행정자치부에서는 최양식 제1차관이 직접 참석했다. 공무원들은 발표내용에 귀 기울이다가 자기 부처에 조금이라도 불리한 주장이 나오면 손을 들고 ‘그게 아니고…’라는 식으로 대응논리를 펴 언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공무원들이 정부 조직 개편의 태풍 속에서 자기 부처의 위상 변화나 권한 위축에 얼마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지 단적으로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전문가 “홍보업무 각 부처서… 홍보처 없애야”

○ “살아남아야 할 텐데…” vs “이 기회에 몸집 늘리자”

최근의 조직 개편 논의와 관련해 가장 긴장하고 있는 부처 중 하나는 여성가족부.

다른 부처와 중복 업무가 많고 외국에 여성부가 거의 없다는 지적 때문이다.

여성부 관계자는 “간부들은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애써 말하지만 많은 직원은 개편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해 개편의 폭이 적기만 바라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경제 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 내부에도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많은 전문가는 현 정부 들어 공정위의 몸집이 너무 불어났다고 지적한다. 또 대선 후보 중 다수가 기업 규제 완화를 내세우고 있어 공정위가 대기업 집단을 압박하는 주요 수단이던 ‘출자총액제한제도’ 등의 규제가 약화되거나 폐지될 가능성도 있다.

대선 후보들의 규제 완화 공약이 두렵기는 환경부도 마찬가지다.

과도한 환경 규제 때문에 기업, 지방자치단체들과 갈등을 빚어 온 환경부로서는 규제가 완화되면 입지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비해 재정경제부는 차기 정부에서 정부조직이 ‘대부처(大部處)제’ 논의와 관련해 조직이 확대 개편되지 않겠느냐는 희망 섞인 전망을 하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직 개편설이 나오던 해양수산부는 최근 2012년 세계박람회(엑스포)가 여수에 유치됨에 따라 입지가 개선되길 기대하고 있다.

한 정부 부처의 관계자는 “현 정부 말기 들어 각 부처가 경쟁적으로 몸집 불리기를 한 것도 결국 이런 상황을 미리 대비한 것”이라고 말했다.

○ 민간학자들 “국정홍보처 폐지해야”

전문가들은 정권이 바뀌자마자 가장 먼저 폐지해야 할 부처로 최근의 기자실 폐쇄를 주도하고 있는 국정홍보처를 꼽고 있다.

한국정책과학회가 6월 행정학 교수, 연구원 등 전문가 417명과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없애거나 축소해야 할 부처’로 홍보처를 꼽은 응답자가 36.6%로 가장 많았다.

김대중 정부 시절 중앙인사위원장을 맡았던 김광웅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도 “정부부처 중 대표적으로 없어져야 할 곳이 홍보처와 행정자치부”라고 지적했다.

홍보처의 주요 기능인 정책 홍보와 국정에 대한 여론수렴은 개별 부처가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언론사’의 역할을 하면서 정권을 비호하는 홍보처를 둘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또 행자부의 기능 중 공무원 조직관리는 중앙인사위원회로, 자치업무는 대부분 지자체로 이관하면 된다고 말했다.

한편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홍보처 폐지를 공약했고,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 역시 해외 홍보에 무게를 싣는 쪽으로 개편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차기 정부에서 홍보처의 개편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 전문가들 “정권 초기에 조직 개편 드라이브 필요”

한국정책과학회장인 이창원(행정학) 한성대 교수는 “차기 정부는 초기부터 노무현 정부에서 비대해진 정부조직을 개편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내년 새 정부 출범 직후인 4월에 총선이 있어 정부 조직 개편이 축소되거나 왜곡될 우려가 있다는 설명이다.

또 서울산업대 김상묵(행정학) 교수는 “조직 개편은 최종적으로 정책 결정자의 몫이지만 여러 논의가 이뤄지는 것만으로도 정부 조직이 긴장하고 조심하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신중론도 나온다.

연세대 전영한(행정학) 교수는 “많은 사람이 정부 조직 개편과 공무원 인력 감축을 연결짓지만 직업공무원제에서는 신분 보장이 돼 있어 조직 개편을 한다고 꼭 인력 감축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역대 정권의 정부 조직 개편▼

정부 조직은 집권한 정권이 지향하는 목표와 국내외 정치, 경제, 사회적 여건에 따라 계속 변해 왔다.

1공화국 3차례, 2공화국 1차례 등 과거에도 대규모 정부 조직 개편이 있었으며 3공화국에서는 27차례, 4, 5공화국에서도 각각 7차례의 조직 개편이 있었다. 노태우 정부에서도 정부 조직이 2차례 개편됐다.

1993년 2월 출범한 김영삼 정부는 ‘작고 강력한 정부’를 내세우며 정부 조직을 개편했다.

1993년 3월 조직 개편에서는 체육청소년부와 문화부가 문화체육부로 통합됐으며 동력자원부와 상공자원부는 상공자원부로 합쳐졌다. 이 과정에서 139명의 공무원 정원이 감축됐다.

‘건국 이후 최대 규모의 정부 조직 개편’으로 불리는 1994년 12월 개편에서는 1만여 명의 공무원이 자리를 옮겼고 1000여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당시 경제기획원과 재무부가 재정경제원으로, 건설부와 교통부가 건설교통부로 통합됐다.

환경처는 환경부로 승격됐고 체신부는 정보통신부로, 보건사회부는 보건복지부로, 상공자원부는 통상산업부로 이름이 바뀌었다.

외환위기 직후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취임 초기인 1998년 초 조직 개편을 했다.

외환위기를 초래한 책임을 물어 ‘공룡 부처’로 불리던 재정경제원을 재정경제부, 기획예산위원회, 금융감독위원회로 해체한 것이 핵심이었다.

이와 함께 각 부처가 나눠 맡던 통상교섭 업무를 외교통상부로 일원화했고 ‘삶의 질 향상’이라는 목표로 식품의약품안전청을 신설했다.

외환위기가 어느 정도 극복된 1999년 5월 조직 개편에서는 예산편성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기획예산위원회와 예산청을 기획예산처로 통합했다. 국무총리 산하 공보실과 문화관광부 등으로 나뉘어 있던 국정홍보 기능을 전담할 국정홍보처도 신설했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대규모 조직 개편 대신 550여 차례에 걸친 크고 작은 조직 개편이 있었다. 각종 위원회 조직 등을 신설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따라 정부 규모는 계속 커졌다.

김동욱 서울대(행정학) 교수는 “변화가 꼭 필요한 시기가 된 만큼 차기 정권에선 덩치를 줄이고 기능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부 조직을 개편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성엽 기자 cp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