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를 겨냥한 한국 정부의 이른바 ‘종전(終戰) 선언 외교’가 집요하게 이뤄지고 있다. 특히 10월의 2007 남북 정상회담에서 남북이 ‘종전 선언을 위한 3자 또는 4자 정상회담을 추진한다’는 내용에 합의한 뒤에는 전 외교 채널을 동원해 총력전을 펼치는 느낌이다.
워싱턴에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등을 만난 뒤 귀국한 백종천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은 5일 “북핵 불능화와 신고문제가 해결된 뒤 핵 폐기 단계의 적당한 시점에서 (4자) 정상의 회동을 고려할 수 있다는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도 지난달 7일 라이스 장관을 만난 뒤 “적절한 시점에 전반적인 비핵화 진전을 위한 정치적 추동력이 필요하다는 평가가 관련국들 간에 내려질 경우 ‘정상급(top level)’에서 정치적 의지를 결집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앞서 남북 정상회담 직후인 10월 5일에는 윤병세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수석비서관이 미국을 찾았고, 조병제 외교부 북미국장도 미국을 두세 차례 들락거리며 종전 선언 등을 주제로 한미 협의를 했다.
하지만 ‘종전 선언=평화협정’으로 보는 미국은 평화체제 협상을 개시하기 위한 ‘정치적’ 종전 선언은 있을 수 없으며, 북한의 핵 폐기 없이 종전 선언을 정상 차원에서 할 것은 더더욱 아니라는 태도를 보인다.
전문가들은 정부 외교안보 라인의 집요한 태도는 9월 시드니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압박하던 모습을 연상시킨다고 지적한다. 당시 노 대통령은 “각하께서 종전 선언에 대해 말씀을 빠뜨린 것 같다” “한국 국민은 그 다음 얘기를 오히려 듣고 싶어 한다”며 부시 대통령을 재촉했다.
하지만 이미 “종전 선언은 북한이 핵무기를 검증 가능하도록 폐기한 뒤의 문제”라고 수차례 말했던 부시 대통령은 “더 어떻게 분명히 말해야 하느냐”고 대꾸했다.
이미 확고한 원칙을 천명한 동맹국의 외교정책에 대해 대통령에 이어 최고위급 외교안보 인사들이 줄줄이 나서서 재촉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세련된 외교가 아니다. 핵 폐기 과정을 보면서 신중하게 진행해야 할 종전 선언 논의를 임기 말 남북관계를 ‘대못질’하듯 해서는 실리를 챙기기도 어렵다.
하태원 정치부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