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엠존에서 열린 서태지 MP3 한정 판매 행사에 1000여 명이 몰렸다. 사진 제공 삼성전자
데뷔 15주년 공연 미출연 사실 알고도 4000명 몰려
서태지는 역시 서태지였다.
1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 KBS 88체육관에서 열린 ‘& 서태지 15주년 기념공연’. 공연이 끝날 무렵 검은색 대형 화면에 하얀색 글씨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나는 너희의 속삭임이 세월의 마법에 사라질 향기라고 생각했다. 세월의 마법에 거짓이 되지 않은 너희들…고마워.” 이어지는 팬들의 간절한 함성. “사랑해.”
이날 공연은 에픽하이, 스윗소로우, 넬, 피아 등 후배 가수들이 서태지의 히트곡을 부르는 ‘트리뷰트(헌정)’ 형식으로 진행됐다. 공연 기획자이자 주인공인 서태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 사실을 알고도 4000명의 팬은 객석을 가득 메웠다.
최근 가요계에 드리운 서태지의 그림자는 이뿐 아니다. 직접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도 팬들을 몰고 다니며 이슈를 낳고 있다.
29일 오후 6시부터 3시간 동안 광화문 교보문고 핫트랙스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데뷔 15주년 기념음반 판매를 시작하자 사전에 예약한 400여 명이 늘어섰다. 교보문고 정주원 파트장도 “줄을 서서 음반을 사 가는 것은 3∼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신기해했다. 판매 1주일 전부터 음반을 구할 수 없느냐는 문의전화도 하루 300∼400통이 넘었다. 같은 날 코엑스 엠존에서 열린 ‘옙 P2 서태지 스페셜 에디션’ 한정 판매 행사도 마찬가지. 서태지 친필 사인이 담긴 26만∼33만 원짜리 MP3플레이어를 100개만 파는 이 행사에 1000여 명이 몰리기도 했다.
한 음악평론가는 이에 대해 “옛 명성으로 돈을 벌려는 마케팅에 불과하다”며 “그 정도 명성이라면 한정 판매라는 말로 구매 욕구를 자극할 게 아니라 뇌사 상태에 빠진 가요계를 살리는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반면 서태지는 오히려 가요계의 척박한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TV 오락물 출연 등 음악 외적인 것으로 승부하려는 요즘 젊은 가수들에 비하면 서태지는 음악만으로 티켓 파워를 창출하기 때문에 비판하기 어렵다는 것.
이날 공연에는 서태지 음악을 듣고 자란 20대 중후반을 넘어선 ‘서태지 세대’가 대부분이었다. 어릴 적 팬클럽 회원이었다는 학원 강사부터 울트라마니아 6집 공연 때 밤새웠던 친구들과 함께 온 회사원까지. 그중 이진아(27·대학원생) 씨에게 아직도 서태지에게 열광하는 이유를 물었다. 바로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서태지니까, 다른 가수는 없으니까요.”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