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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인생 훈수]목이균씨가 아들 목진석 9단에게

입력 | 2007-12-06 02:56:00

목이균(왼쪽) 씨와 목진석 9단이 2004년 바둑TV가 마련한 부자(父子) 페어바둑에서 대국을 한 뒤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 제공 바둑TV


‘한 우물’만큼 ‘다양한 삶’도 소중

바둑外 분야에도 열정 잃지 말길…

진석아, 1994년 겨울 네가 그토록 원하던 프로기사가 된 뒤 우리 가족은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지. 제주도 관광도 즐거웠지만 당시 너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얘기를 나눈 것이 무척 기억에 남는다.

그때 삶은 부모나 다른 사람의 희망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 반사회적인 일탈만 하지 않으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게 행복한 인생이라고 얘기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바둑의 길을 가겠다고 한 것이나 바둑의 길에 방해가 된다며 중학교를 중퇴할 때도 모두 네 결정이었다.

부모의 뜻에 따라 수많은 학원을 다니고, 공부하라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고 사는 아이들에 비하면 삶을 스스로 개척하는 게 너를 위하는 길이라고 믿었기에 네 의사를 100% 존중하고 따랐다.

‘한 우물을 파야 성공한다’고 하지만 그건 옛날 얘기라고 생각한다. 나는 외려 내가 ‘바둑’의 한 우물만 파지 않은 것이 자랑스럽다. 네가 중국어도 중국 사람 못지않게 능통하게 하고 음반을 취입하고 테니스 축구 헬스 등 다양한 운동을 즐기며 사는 걸 보면 마음이 뿌듯해진다. 내 인생의 모토가 ‘운동량을 최고로’라고 말한 적 있지. 그건 뭘 하든 게으르고 나태하지 말고 부지런히 몸과 머리를 움직여 살아가라는 뜻이었다.

다양한 인생을 즐긴 것 때문에 바둑에서 최고가 되지 못했다고 생각하진 않겠지? 아버지의 생각은 정상에 올라가기 위해 안달복달하는 것보다 네가 무엇이든 행복하게 받아들이며 사는 게 좋다고 믿는다. 정상은 영광스럽지만 외로운 자리이고 혹시 올라간다고 해도 다시 내려와야 한다. 정상에 올라가는 것 자체는 좋지만 그것이 너를 갉아먹어서는 안 된다.

집착이나 욕심이 인생에 암적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이미 깨닫고 있겠지.

부득탐승(不得貪勝·승리를 탐하지 말라) 사소취대(捨小取大·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해라) 등 바둑의 격언이 인생에도 유용하다는 점을 기억해라.

그래서 아마 5단인 내가 너에게 바둑 성적 얘기를 일절 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다. 네가 기분이 좋아 엄마나 내게 말하는 경우 외에는 우리가 먼저 성적 얘기를 하지 않는 것은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그래도 요즘 연간 최다대국 기록을 경신하고 올해 88승을 거둬 연간 최다승(90승)에 도전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니 대견스럽다.

바둑의 승부가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승부를 초월하는 인격이 더 필요하고, 인간관계가 더 중요하며, 바둑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올바른 판단력을 가지는 게 더 중요하다. ‘프로기사 목진석 9단의 아버지’라고 나를 소개할 때마다 항상 기분 좋을 수 있도록 해 주면 더욱 바랄 나위가 없다.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