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BK 수사 어떻게 했나
“수사 기록만 18권, 2만 쪽이 넘는다. 너무 방대해서 몇 쪽인지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다.”
5일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에 대한 수사 결과가 발표된 직후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 소속의 한 검사는 이같이 말했다.
특별수사팀을 이끈 서울중앙지검 최재경 특수1부장도 이날 “당시 상황을 97% 정도 복원해냈다”고 말했다.
그만큼 검찰이 김경준(41·구속 기소) 씨의 주장과 근거들을 과학적으로 비교 분석하고, 이 후보 관련 의혹의 실체를 가리기 위해 ‘저인망식’으로 수사를 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검찰은 특별수사팀을 구성한 직후 정치권과 일부 언론 등에서 제기한 의혹을 쟁점별로 60∼70개 정도 추렸다. 이어 수사기관으로서 관련 의혹을 파헤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찾기 위해 아이디어 회의를 끊임없이 열었다고 한다.
검찰은 주가조작과 횡령, 다스의 실소유주 의혹을 파헤치기 위해 400여 개의 국내외 계좌를 추적했다. ‘경제적인 사건’이라 돈의 흐름이 사건의 실체를 확인하는 결정적 물증이기 때문. 김 씨가 조세회피지역에 서류상 회사를 많이 설립해 검찰이 확인한 법인만도 70∼80곳 정도였다.
특히 이 후보가 다스의 실소유주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검찰은 이례적으로 법원으로부터 포괄적인 계좌추적 영장을 발부받았다. 이 계좌 추적 영장을 통해 검찰은 다스의 10년 치 법인명의 계좌의 흐름을 모두 파악했으며, 9년 치 회계장부도 샅샅이 훑었다. 연결 계좌 1개가 등장하면 또다시 영장을 청구하는 방법이 반복됐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다스의 계좌 추적이 늦어지면서 아무도 수사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2002년 3∼8월 검찰이 한 차례 조사한 옵셔널벤처스코리아의 주가조작과 횡령에 동원된 계좌들도 검찰은 다시 살펴봤다. 당시 상황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참고인으로서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참고인으로 소환된 사람만 연인원으로 100∼200명이다. 이 후보의 최측근인 김백준 전 서울메트로 감사와 이진영 전 옵셔널벤처스코리아의 직원은 4차례씩 검찰에 소환됐다.
금융사건에 휘말려 미국으로 도피 중이던 김경준 씨의 옛 직장동료 오모(40) 씨도 e메일 등으로 검찰이 요구하는 진술을 했다.
또한 김 씨의 와튼스쿨 동창생으로서 LKe뱅크와 주식매매계약서를 체결한 AM파파스의 관계자로 소개된 래리 롱 씨와도 영어에 능통한 검사가 직접 통화를 했다.
이에 앞서 검찰은 김 씨가 위장한 해외법인의 대표이사나 국내법인의 이사로 등재된 사람의 이름과 같은 사람이 한국에 입국한 적이 있는지를 출입국 기록을 통해 확인한 뒤 그 사람의 실제 거주지를 확보해 연락을 시도하기도 했다.
검찰의 고위 관계자는 “이번 수사는 특정인의 혐의 100개 중 1개가 혐의가 있는지 보는 수사가 아니라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출발해서 혹시 1개의 혐의라도 있는지 확인하는 차원의 수사였다”며 “물리적으로 확인 가능한 100% 수단을 동원했다”라고 말했다.
이런 자신감 때문인지 김홍일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는 이날 수사팀 검사 전원을 배석시킨 가운데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올 8월 서울 강남구 도곡동 땅 차명 소유 의혹 수사 발표나 2002년 10월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장남 병역비리 의혹’ 수사 결과 발표 때도 없던 일이다.
임채진 검찰총장이 지난달 26일 취임사에서 “엄격한 증거법칙과 정확한 법리 판단을 유일한 기준으로 ‘있는 것은 있다, 없는 것은 없다’고 하겠다”고 말한 그대로였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