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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K’와 5년전 ‘병풍’ 같은 점 다른 점

입력 | 2007-12-06 02:56:00


범여권과 김경준 씨 등은 그동안 BBK 사건에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가 연루됐다는 의혹을 줄기차게 제기해 왔지만 5일 발표된 검찰 수사 결과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범여권이 장담해 온 ‘BBK 한방’은 결국 전형적인 네거티브 공세가 돼 버린 셈이다.

한나라당은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의 아들 병역비리 의혹을 확대 재생산하며 선거판을 흔들었던 범여권의 ‘김대업식 병풍(兵風) 공작’이 5년 지난 2007년 대선에서 ‘김경준의 BBK 사건’으로 탈바꿈했다고 주장했다.

▽병풍 공작과 BBK 사건의 닮은 꼴=5년이란 시차를 두고 대선정국을 혼란에 빠뜨렸던 두 사건은 여러 면에서 닮은 점이 많다.

우선 의혹 제기 주체가 비슷하다. 의외의 인물이 갑자기 등장해 의혹을 계속 증폭시켰다. 2002년에는 김대업이, 2007년에는 김경준이 그 역할을 맡았다. 여기에 범여권이 가세해 정치권 공방을 주도하며 의혹을 더욱 증폭시켰다. 대통합민주신당은 이름만 바뀌었을 뿐 2002년 병풍 의혹을 확산시켰던 정치세력을 토대로 하고 있다.

의혹을 증폭시키는 과정도 흡사하다. 폭로자가 등장해 각종 기자회견과 인터뷰를 통해 의혹을 부풀리면 정치권이 이를 받아 재가공해 증폭시키고, 일부 매체가 이를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또 자신의 의혹 제기를 입증하겠다며 거짓 증거물을 들고 흔든 것도 비슷하다. 김대업은 ‘녹음 테이프’를, 김경준은 ‘이면계약서’를 결정적 증거라며 검찰에 제출했지만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의혹을 푸는 해결사로 검찰이 똑같이 등장했고, 검찰수사 결과 의혹을 제기했던 당사자들은 모두 구속됐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이날 “국정을 망친 세력이 또다시 똑같은 수법으로 정권을 연장하려 했지만 국민이 속지 않아 실패했다”며 “2007년 BBK 사건은 2002년 병풍 공작의 판박이다”고 말했다.

▽과정은 흡사하지만 결과는 전혀 달라=2002년 김대업의 병풍 공작으로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지지율이 급락해 결국 대선에서 졌다.

그러나 2007년 대선에서 표적이 된 이명박 후보는 네거티브 공세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1년 내내 40% 안팎의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대선을 14일 앞둔 5일 검찰의 ‘혐의 없음’이라는 수사 결과 발표로 BBK 사건은 오히려 이 후보의 대세론을 굳히는 ‘호재(好材)’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검찰의 태도와 한나라당의 대응방법도 5년 전과는 크게 달랐다.

2002년 검찰의 수사과정은 수시로 언론에 흘러나왔다. 검찰이 김대업을 수사하는 동안 의혹은 오히려 증폭됐다. 수사 결과 발표도 대선이 끝난 뒤에나 했다.

그러나 2007년 검찰은 김경준 씨의 국내송환에서부터 수사결과 발표 때까지 수사상황을 철저히 보안에 부쳤다. 또 대선 전에 모든 의혹에 대한 수사결과를 일괄발표하는 민첩성까지 보였다.

2002년 병풍에 휩싸인 한나라당은 ‘정치공작’이란 얘기만 반복하면서 정치적 공방에만 치중했다. 편파수사를 하지 말라며 검찰을 압박할 뿐 검찰 수사에는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았다.

반면 2007년 한나라당은 정치적 공방뿐 아니라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면서 무혐의를 입증하려는 공세적 자세로 임했다. 이명박 후보 스스로 검찰의 서면조사에 응한 것은 물론 최측근 김백준 씨 등 핵심 인물들이 검찰에 자진출두하고, 증거자료들을 모두 제출하는 등 적극적이었다.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로 들어간 셈이다.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해 무혐의를 입증해 내는 대응전략은 검찰 출신인 정종복 종합상황실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