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면 늘 생각나는 곳.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다.
그 이유는 겨울의 진미 과메기 때문이다.
겨울 구룡포는 그야말로 ‘과메기 익는 마을’이다.
머리와 뼈, 내장을 추려 낸 후에 꼬리까지 두 쪽으로 가른 꽁치 살을 껍질 째 얇은 대 꼬치에 걸어 말리는 과메기 덕장이 구룡포항부터 북쪽 영일만의 호미곶까지 해안가 집집마다 마련되기 때문이다.》
○ 20년 전 노스님에게서 전수 받은 맛
20년 전 포항의 한 노스님에게서 전수받은 과메기 맛. 당시만 해도 과메기는 ‘배진 것’(현재 판매되는 것처럼 칼로 배를 갈라 머리와 내장 뼈를 추려내 살만 골라낸 것)만큼이나 ‘엮걸이’(내장이 든 꽁치를 통 째로 짚에 엮어 말린 것)도 많았고 또 ‘오리지널 버전’인 청어 과메기도 꽤 있었다. 그 과메기는 늘 신문지에 싸여 서울로 공수됐고 그 신문지 위에 펼쳐 놓고 내장과 뼈를 추려내 노라면 온 실내가 비린내로 가득 차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을 애써 이겨가며 먹어야 했던 애환이 깃든 음식이었다.
그러던 과메기도 20년 만에 크게 변했다. 청어 과메기는 아예 자취를 감춘 지 오래고 과메기의 100%를 차지하게 된 꽁치 과메기도 이제는 엮걸이를 찾아 볼 수 없게 됐다. 빛바랜 신문지에 둘둘 말아 싸 주던 풋풋한 옛 정취도 함께 사라졌는데 깔끔한 포장지에 싸인 과메기에서는 아무래도 옛 맛을 느끼지 못하니 이것도 큰 아쉬움 가운데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맛을 들인 ‘과메기 러버’는 크게 늘어 2000년 60억 원이던 구룡포 과메기 매출액이 지난해에는 400억 원이나 됐다.
올해도 어김없이 겨울은 찾아왔고 옷깃 새로 찬바람 불어대니 예의 그 과메기 애수가 동해 불원간에 차를 달려 구룡포 선창을 찾았다. 그런데 늘 어선들로 북적이던 구룡포항은 한창 부두확장공사로 어수선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래서 곧바로 구룡포읍과 이웃한 삼정리 포구의 바닷가로 과메기 덕장을 찾아 나섰다.
과메기 취재차 구룡포항을 오간지도 벌써 10여 년. 원로(遠路)의 과객을 올 때마다 반기는 이가 있으니 바로 이 바다의 백구(白鷗)다. 갈매기란 놈들은 참으로 희한하다. 먹는 모습을 보면 게걸스럽고 사는 모습을 보아도 그리 정갈한 것 같지 않은데 그 품새는 어찌 그리 우아하고 또 깃털은 어찌 그리 깔끔한지. 언제 보아도 순백의 하얀 털이 어제 막 갈아입은 듯 희다.
○ 백구 떼가 푸른바다 벗삼아 나는 구룡포
구룡포에서 호미곶으로 해안을 따라 달리는 길가(지방도 929호선)로 펼쳐지는 그 멋진 바닷가에는 늘 이 백구 떼가 푸른 바다를 벗해 날고 있다. 그리고 그 갈매기 떼의 비상과 자유로운 비행은 늘 시간에 쫓겨, 사람에 치여, 그리고 일에 파묻혀 사는 나 같은 도시의 일중독 환자의 몸과 마음을 바람처럼 자유롭게, 허공의 깃털처럼 가볍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 구룡포 여행은 늘 가슴 설레고 엔도르핀이 퐁퐁 샘솟게 만드는 마력을 지닌다.
삼정포구 갯마을의 동네 길로 느릿느릿 차를 몰다가 마침 햇빛 쏟아지는 방파제 앞마당에서 과메기를 고르는 김미형(43) 씨를 만났다. 남편 김상훈(49) 씨는 고기잡이를, 칠순의 시어머니는 평생 해녀를 하며 살아온 토박이다. “오징어 잡으러 구룡포 배가 서해까지 나가고 있으니 여(기)도 한참 변했지예.” 지구온난화로 인한 바다의 수온변화로 어업전진기지인 구룡포항의 오징어잡이가 시원찮아졌음을 말하는 대목이다. 그래서 남편 김 씨도 뱃일이 줄어드는 겨울이면 구룡포의 명물이 된 ‘과메기 농사’에 전념한단다.
구룡포 과메기도 원래는 동해산 꽁치를 썼다. 그것도 가을 꽁치로만 만들었다. 옛말에 ‘꽁치는 서리가 내려야 제 맛이 난다’고 했다. 가을에 꽁치살의 지방함량이 최고(20%)에 달함을 말한다. 그러면 지금은 어떨까. 10월에 쿠릴 열도 근방에서 조업해 11월에 입하되는 원양산이 대종이다. 원양꽁치라도 우리 어선이 잡은 것은 과메기 중에서도 상급 품이다. 왜냐하면 곧바로 부산항을 통해 구룡포에 공급하기 때문이다. 일본산은 육동(선상 냉동된 꽁치를 육지로 반입해 해동했다가 다시 수출 길에 냉동하는 것) 과정에서 선도가 떨어진다(구룡포과메기영어조합법인 간사 김재일 씨·하나 과메기상사 대표).
‘등 푸른 생선 사총사’(고등어 정어리 전갱이 꽁치) 가운데 하나인 꽁치. 꽁치는 DHA가 풍부하고 고혈압 동맥경화 등 성인병을 예방하며 학습능력을 높인다고 백과사전에 적혀 있다. 또 항산화작용으로 젊음을 유지시키는 비타민E와 셀레늄(Se)도 많다고 나와 있다. 특히 꽁치의 붉은 살에는 악성빈혈을 막아 주는 비타민 B12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누가 이런 영양가에 현혹돼 과메기를 찾을까. 대부분은 그 투박하면서도 구수한 맛에 매료된다. 풋내 물씬 나는 배춧잎에 바다향내 솔솔 풍기는 물미역을 올리고 초고추장에 찍은 기름 살짝 오른 과메기 한 점 위에 된장에 찍은 풋고추와 마늘조각을 놓고 마지막으로 쪽파를 올려 쌈해서 먹을 때 입안 가득히 퍼지는 포만감. 거기에 소주 한 잔이면 한겨울 몰아치는 한파도 그리 두렵지 않으니 과메기 식도락이야말로 한겨울 진미 중의 진미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주의할 점 하나, 구룡포 갯가의 바람과 햇빛 속에서 살 속의 기름이 살살 빠져나오며 검붉은 색으로 살포시 발효된 ‘구룡포 과메기’라야 이제 금방 침을 삼키게 한 그 맛을 내니 가능하다면 구룡포 것으로 시식하시기를. 발품 팔아 구룡포 갈매기 날갯짓 보며 바닷가에서 먹는 것이 최고다.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여행정보
◇구룡포 항 ▽찾아가기 △손수 운전=서울∼경부고속도로∼대구∼익산포항고속도로∼포항∼국도31호선∼구룡포항(서울∼포항 336.5km). △시외버스=서울∼포항. 포항에서는 200번 버스 탑승 ▽과메기 맛보기(산지 택배주문)=한 두름(20마리)에 1만 원. 배추 김 물미역 고추 파 마늘과 초고추장 된장 등을 담은 과메기 시식세트는 2만 원. 해동상사(김상훈) 054-276-3217, 011-827-5077 ▽맛집=‘할매전복집’(구룡포6리)은 토박이 김정희 씨가 대를 물려 운영하는 전복 전문식당. 전복회는 100% 자연산이다. 회는 1kg에 13만 원, 죽은 1만2000원. 054-276-3231 ▽구룡포 과메기축제=29∼31일 구룡포항에서 열린다.
◇호미곶 해맞이축전= 한반도에서 아침을 가장 먼저 맞을 수 있는 곳으로 매년 30만 명이 참가한다. ▽기간=31일 오후 5시∼1월 1일. ▽장소=호미곶 해맞이광장(포항시 대보면) ▽찾아가기=구룡포항∼지방도 929호선(20분 소요) ▽새해 첫날 해돋이 시각=오전 7시 32분. ▽문의=포항시청(sunrise.ipohang.org) 054-270-2251∼3
◇패키지여행=무박 2일 버스투어, 4만8000원. 호미곶 일출, 과메기 시식, 14, 21일 서울 출발. 승우여행사(www.swtour.co.kr) 02-720-8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