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전 9시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 법과대 강의실. 이 대학 이기용(50·사진) 교수의 이번 학기 마지막 ‘담보물권법’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날 강의실에는 150여 명의 학생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 중 누구도 이날 수업이 이 교수 생애 마지막 수업이 되리라는 걸 알지 못했다.
오전 10시 15분까지 예정돼 있던 이날 수업은 오전 11시가 돼서야 끝났다. 10년째 강의하면서 휴강 한 번 하지 않던 이 교수가 이번 학기에는 4번이나 휴강을 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수업이 끝날 무렵 “휴강은 했지만 보강을 해 진도를 마쳐 다행”이라며 “사실은 지금 암 투병 중이고 항암치료 때문에 휴강을 했다”고 학생들에게 담담히 털어놨다.
학생들은 술렁였다. 보통 45분 수업 내내 쉬지 않고 강의하던 이 교수가 요즘 30분 만에 양해를 구하고 나갔다 들어오는 일이 이상했지만 암에 걸렸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이 교수는 학생들에게 “몸이 좋아지면 다음 강의 때 꼭 다시 만나자”며 당황해하는 학생들을 미소로 진정시키고 수업을 마쳤다.
하지만 이 교수는 학생들에게 한 약속을 영원히 지키지 못하게 됐다.
그는 수업이 끝난 뒤 채 4시간이 지나지 않은 오후 2시 45분경 연구실에서 갑자기 쓰러졌다. 그리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심근경색이었다.
이 교수의 동료인 성균관대 법학과 박광민 교수는 “항암치료로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도 마지막까지 수업을 계속하다가 이런 일이 생긴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50세인 이 교수가 직장암 3기 판정을 받은 것은 2개월 전이었다. 우연히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으러 갔다가 암 진단을 받았다.
동료 교수들은 “당장 입원해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권유했지만 이 교수는 “이번 학기 수업은 꼭 마치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이후에도 이 교수는 학부 수업 2과목, 대학원 수업 1과목 등 일주일에 8시간씩 강의를 계속했다.
이 교수는 집안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남몰래 용돈을 쥐여 주던 따뜻한 스승이었다. 주머니가 빈 학생들에게 밥을 사준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 교수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는 30∼40명의 학생이 스승의 빈소를 지키고 있다.
이 대학 법과대학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도 학생과 동문들의 추모 글이 쏟아지고 있다.
성균관대는 이 교수의 영결식을 7일 오전 10시 법학관 모의법정에서 ‘법과대학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02-2072-2016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