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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칼럼]‘1등 죽이기’ 공화국

입력 | 2007-12-07 20:25:00


앞서 두 차례 대통령 선거는 여론조사 지지율 1위 후보가 집중적인 네거티브 공격을 받다가 추락하는 양상으로 전개됐다. 이회창 후보는 1997년, 2002년 내리 청와대 입성 문턱에서 네거티브 공격에 무너졌다. 네거티브에 한이 맺혔을 그가 이번에는 이명박 후보를 공격하는 네거티브에 동참하고 있다. 배역이 달라진 연기자 같다.

이번 선거에서는 두 차례 전례(前例)의 ‘학습 효과’ 때문인지, 흠결을 인정하면서도 ‘대안부재(代案不在)’라고 생각하는 유권자가 많아서인지, 1등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의 약발이 예전 같지는 않다. 그런 뜻에서 한국 대선의 양상을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우리 사회에서 ‘1등 죽이기’는 여러 형태로 벌어진다. 삼성은 한국을 대표하는 1등 기업이다. 매출액은 국내총생산(GDP)의 6분의 1에 이르며, 지난해 수출은 나라 전체 3255억 달러의 5분의 1을 기여했다. 그런데 ‘삼성공화국’ ‘공룡 삼성’이라는 낙인을 찍으며 다리를 거는 세력도 만만찮다. 마침내 삼성그룹 전 법무팀장 김용철 변호사의 비자금 및 떡값 폭로를 계기로 한 기업 집단만을 겨냥한 특검법이 발동되기에 이르렀다.

최근 재단법인 ‘행복세상’을 발족한 김성호 변호사는 법무부 장관 시절 “과거의 분식회계를 스스로 바로잡는 기업에는 형사처벌을 면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분식회계가 어느 한 기업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1등 기업이 대표로 당하게 됐다는 말이 나온다. 삼성의 투자와 경영이 위축되면 협력기업과 관련 산업, 그리고 경제 전반에 걸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점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삼성 특검이 1등 기업 죽이기가 아니라 투명성을 높여 건전한 글로벌 기업을 만드는 데 목표를 둬야 하는 이유다.

삼성, 미래에셋, 김&장 때리기

최근 증시에서는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앞서 나가는 미래에셋 금융그룹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 난다. 미래에셋은 간부급 펀드매니저의 선행매매 가담 루머가 느닷없이 돌면서 금융감독원 감사를 받고 있다. 미래에셋이 운용하는 총자산은 45조9000억 원으로 동종업계에서 2등을 두 배 이상 앞서는 독보적 1등이다. 미래에셋은 국내시장에 안주하지 않고 금융의 해외수출에도 개척자 역할을 하고 있다. 리딩 컴퍼니에 대한 두려움과 질시가 지나쳐 역동적인 금융수출 기업을 죽이는 어리석음을 범해선 안 된다. 미래에셋의 대내외 경쟁력은 우리나라 금융 및 자산운용 비즈니스의 소중한 핵심 역량이다.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재판에서 변론을 맡았던 김&장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거론했다. 김&장은 ‘로펌 업계의 삼성’으로 불린다. 로펌 중에서는 김&장이 압도적인 1등이고 3, 4개 로펌이 2위를 다투고 있다. 그래서 김&장을 견제하고 질시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김&장이 전직 관료 등을 광범위하게 영입하는 것을 두고 ‘로비스트 회사’라는 비난도 나온다. 그러나 외국인 투자기업에 토털서비스를 제공하다 보니 불가피했을 것이라는 관점도 있다. 법률시장 개방을 앞두고 국내 1등 로펌에 대한 시샘이 아니라 한국 로펌이 세계적인 로펌과 경쟁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1등 죽이기’ 게임의 코드는 평등이다. 이번 대학입시에서 말썽을 일으킨 등급제 수능이나 내신 위주의 입시도 알고 보면 과학고 외국어고 자립형사립고 같은 일류 고교와 SKY(서울-고려-연세대) 같은 일류 대학을 끌어내리자는 정책 의도에서 나왔다.

일등 격려해야 일류 국가 된다

1등이 주는 긍정적 외부효과(externality)를 생각해 보면 잘나가는 1등 끌어내리기는 어리석은 사고방식이다. 외부효과란 과수원 주인이 과일 나무를 심으면 이웃이 덕을 보는 현상을 말한다. 과수원에 꽃이 활짝 피면 양봉업자의 벌꿀 생산량이 늘어나고, 일자리가 생겨나 이웃에도 과실이 돌아간다. 과수원 길을 걸으며 경치를 감상하고 꽃향기에 취해 볼 수도 있다. 삼성, 미래에셋, 김&장, 일류 대학이라는 과수원에 풍년이 들면 그 집 식구들만 좋은 것은 아니다.

남의 자식 1등 한다고 박수는 치지 못하더라도 배 아파할 일은 못 된다. 우수한 인재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해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게 되면 학교 교육에 따른 사회적 이득은 개인적 이득보다 크다. 우리 사회가 1등 죽이기 게임에 탐닉하다 보면 세계시장에서 1등 하는 품목이 사라져 하류(下流) 국가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황호택 수석논설위원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