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태안반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국내 최악의 해상 원유 유출 사고로 서해안 일대에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유출된 기름은 1995년 전남 여수 해안에서 일어난 시프린스호 사고 때보다 2배나 많은 1만500kL에 이른다. 시프린스호 사고 때는 여수에서 포항까지 230km의 해안이 오염돼 응급방제에 한 달 이상, 기름 회수 작업에 다섯 달이 걸렸다. 정부가 사고 발생 다음 날 충남 일대 6개 시군에 재난사태를 선포했을 정도로 사태는 심각하다.
이미 폭 20m가량의 기름띠가 태안군 해안으로 밀려와 곳곳의 양식장과 해수욕장이 기름 범벅이 돼 버렸다. 기름띠는 태안화력발전소를 중심으로 남북 약 45km에 걸쳐 있지만 사흘 동안 방제작업으로 회수된 기름은 156kL에 불과하다. 태안군 소원면 주민들은 “양식장이 아스팔트로 변해 버렸다”고 탄식했다. 이대로 가면 인근 횟집까지도 모두 문을 닫을 판이다.
보전 가치가 높은 태안반도의 해안국립공원의 아름다운 해양생태계도 회복할 수 없는 손상을 입을까 봐 걱정이다. 기름띠가 덮친 신두리 사구(砂丘)는 천연기념물이고, 사구 배후 두웅습지는 습지보호지역이다. 신두리 해상은 해양생태계보전지역이다.
해양경찰은 처음엔 바람이 바다 쪽으로 불어 해안으로 기름이 많이 유입되지 않을 것으로 안이하게 판단했다. 그러나 13시간 만인 7일 오후 9시경부터 해안에서 기름띠가 발견됐다. 유조선에 뚫린 3개의 구멍을 막는 작업도 늦어져 그중 1개는 이틀 만인 9일 오전에야 마무리됐다. 이렇게 허술한 대처가 피해를 키웠다고 볼 수밖에 없다.
대선을 앞두고 가뜩이나 어수선한 상황인데 사상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까지 터져 불안한 연말이다. 정권 말기에 담당 행정력에 누수(漏水)가 생기지 않도록 정부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방제 현장에 자원봉사자들이 몰려들고 있다는 소식이다. 해안을 덮친 기름띠를 제거하는 데 너도나도 힘을 합치면 복구 작업이 빨라질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피해 어민들을 구제하고, 천혜(天惠)의 태안해안국립공원을 보호하는 데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