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과거’ 대입논술
1000년 넘은 전통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죠
“처음부터 끝까지 잘하는 정치란 무엇인가?”
“교육이 가야할 길은?”
“그대가 공자(孔子)라면 어떤 정치를 펴겠는가?”
언뜻 보면 여느 대학의 논술 문제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조선시대 과거(科擧) 문제다. 과거에는 여러 단계가 있었다. 본고사 격인 대과(大科)를 보려면, 먼저 소과(小科)에 붙어야 했다. 소과시험에는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얼마나 아는지 묻는 생원과와 시(詩) 등으로 문장을 가늠하는 진사과가 있었다. 충분히 지식을 쌓고 문장력을 갖춘 뒤, 대과에서 ‘종합 사고 능력’을 측정하는 모양새다.
이 점에서 과거제도는 대입논술과 닮은꼴이다. 논술을 준비하려면 먼저 교과서의 지식을 튼실하게 쌓아야 한다. 게다가 토론과 쓰기 연습으로 문장력을 갖춰야 한다. 논술 대비에는 인격을 가다듬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글은 지은이를 빼다 박는 법, 마음이 삐딱한 사람의 글은 읽기도 불편하다. 인품을 갖춘 이의 글은 편안하게 읽힌다. 이처럼 논술 시험은 한 사람의 능력뿐 아니라 인성까지도 알아내는 평가다. 그래서 프랑스 계몽주의자들은 과거를 이상적인 인재 선발 방식이라 치켜세우곤 했다.
하지만 성마른 수험생들은 편법에 대한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 입시철마다 논술 모범답안과 요약집이 인기를 끄는 이유다. 조선시대에도 다를 바 없었다. 선비들은 과거 답안지를 모아놓은 과시(科詩), 과표(科表) 등으로 수험 준비를 했다. “모범답안을 베낀 듯한 천편일률적인 답안이 많았다”는 대학 채점위원장들의 하소연이 여기서도 들리는 듯하다.
게다가 족집게 고액과외까지 판쳤었다. 선비들은 공교육인 성균관보다 사교육인 향교로 몰려들었다. 채점의 공정성에 대한 시비도 끊이지 않았단다. 그래서 정약용은 과거제도를 없애고 ‘추천제 전형’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이 점도 지금의 입시 분위기와 비슷하다. ‘지역균형선발’과 ‘학교장 추천제’를 강화하자는 주장이 떠오르지 않는가.
하지만 논술이 도마에 오르는 이유는 시험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논술은 결코 벼락치기가 가능한 시험이 아니다. 오랜 기간 독서와 사색으로 정신의 기초체력을 꾸준히 가꾼 학생이 좋은 평가를 받는 시험이라는 뜻이다. 어느 시험이나 부작용은 있기 마련이다. 논술은 천년 넘게 이어온 과거제도를 통해 검증된 평가 방식이다. 논술이 평가의 대세(大勢)가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