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의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여자는 자신을 사이보그로 착각해 커피자판기와 대화를 나눕니다.
남자는 세상에서 소멸되지 않기 위해 미친 듯이 이를 닦습니다.
둘은 사랑에 빠집니다.
황당한 얘기라고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가장 비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남녀, 그들은 어쩌면 가장 인간적이니까요.》
▶easynonsul.com에 동영상 강의
난 누굴까… 왜 살까… 삶이란 존재의 이유 찾는 방랑 아닐까요
[1] 스토리라인
정신병원. 자신을 사이보그라고 굳게 믿는 여성 ‘영군’(임수정)은 밥을 일절 입에 대지 않습니다. 대신 건전지를 ‘식사’하면서 하루하루 야위어 가지요. 영군의 유일한 낙은 외할머니가 남긴 틀니를 낀 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환청을 들으며 자기세계에 빠지는 일입니다.
같은 병원에는 남자 ‘일순’(정지훈)이 있습니다. 그는 남의 마음이나 행동을 감쪽같이 훔치는 능력을 가졌다고 믿고 있습니다. 자신이 ‘세상에서 소멸될지도 모른다’는 강박 속에 사는 그는 시도 때도 없이 가면을 써서 얼굴을 감추려 듭니다.
일순은 영군의 마음속에 있던 동정심을 훔칩니다. 그러면서 그녀의 아픔을 대신 느끼게 되지요. 일순과 영군은 자신들의 ‘존재의 목적’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이런 결론에 이릅니다. ‘십억 볼트의 전기를 모으면 우리 존재의 목적을 찾을 수 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 둘은 번개를 모으기 위해 컴컴한 들판으로 나갑니다. “번개가 안 오면 어쩌지?”하며 초조해하는 영군. 그녀에게 일순은 발랄하게 외칩니다. “그냥, 희망을 버려!”
[2] 핵심 콕콕 찌르기
영군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환청을 들으면서 “‘칠거지악(七去之惡)’의 감정을 완벽하게 버려야 한다”고 끊임없이 되뇝니다. 영군이 일컫는 칠거지악이란 ‘절대로 가져서는 안 되는 나쁜 감정’입니다. 첫째 ‘동정심’, 둘째 ‘슬픔에 잠기는 것’, 셋째 ‘설렘’, 넷째 ‘망설임’, 다섯째 ‘공상’, 여섯째 ‘죄책감’, 그리고 마지막 일곱째 ‘감사하는 마음’이 그것이지요.
이상하네요. 하나 같이 아름다운 마음씨인데, 영군은 왜 이를 악한 감정으로 규정하는 걸까요?
이건 일종의 반어법(反語法)입니다. 영군은 일곱 가지 마음 때문에 지금껏 너무나 많은 상처를 입고 피폐해져 왔습니다. 결국엔 정신병원에서 여생을 보내야 할 정도가 되었지요. 여기서 우린 칠거지악에 대한 영군의 환청이 단순한 환각현상이 아니라, 영군이 자기 내면을 향해 강박적으로 다짐하는 내용이란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영군은 스스로에게 이런 주문을 걸고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지요.
‘다시 일곱 개의 감정을 갖게 되면 세상을 살아가는데 또다시 큰 상처를 받게 될 거야. 그러니까 안 돼. 이런 마음을 버려!’
어찌 보면 영군이 자신을 사이보그라고 믿게 된 건 그녀의 절박한 선택입니다. ‘나는 칠거지악의 감정이 증발되어 버린 사이보그’라는 자기최면을 걸지 않는다면, 그녀는 다시 이 삭막하고 동정 없는 세상을 살아낼 재간이 없는 것이지요.
일순도 사실은 영군과 같은 맥락 속에 있는 인물입니다. 일순에겐 이른바 ‘소멸 불안’이 있습니다. 자기가 세상에서 사라져 없어질 것을 끊임없이 두려워하는 증세이지요. 일순은 자신이 ‘무(無)의 존재’가 되는 것에 불안감을 느꼈고, 그래서 자꾸만 남의 마음과 행동을 훔치려고 했던 겁니다. 사라져 가는 자신의 존재를 타인의 마음과 행동으로 채워 넣기 위해서 말입니다. 일순이 영군에게 비밀처럼 들려주는 이 대사 속에 일순의 강박적인 심리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난 사정이 있어서 남의 행동을 훔쳐. 내가 소멸될까봐….”
일순이 불안감을 느낄 때마다 마구 이를 닦아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자신의 이가 소멸될까봐, 그래서 자기 존재 자체가 소멸될까봐 그는 필사적으로 이를 닦았던 것이지요.
여기서 우리는 영화의 키워드와 맞닥뜨리게 됩니다. 영군의 환상 속에 나타난 외할머니가 목이 타게 외치던 바로 그 한마디죠. “존재의 이유” 말입니다.
외할머니는 끝내 그 ‘존재의 이유’가 무엇인지 영군에게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영군과 일순은 (그들 스스로는 알지 못했지만) 그 답을 찾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들은 이미 어떤 인간들보다 인간적이었으니까요. 자기존재의 이유를 찾아 헤매는 그들의 모습 자체가 그들이 존재해야 할 이유였던 겁니다.
결국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란 해괴망측한 제목은 이런 뜻이 아니었을까요?
‘너는 스스로를 사이보그라고 믿지만, 그래도 괜찮아. 사이보그라고 믿는 너야말로, 그 어떤 다른 인간보다 더 따스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존재니까 말이야….’
[3] 알쏭달쏭 퀴즈
영화에는 영군과 일순이 진정 귀하게 여기는 물건이 하나씩 등장합니다. 이들 물건은 그들의 내면심리를 밖으로 드러내어 보여주는 일종의 상징물들이지요.
먼저 영군의 틀니. 외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이 틀니를 끼는 순간 영군은 예외 없이 환청과 환상을 체험합니다. 그러면서 기계들과 대화를 나누는 능력을 갖게 되지요.
다음은 일순의 가면. 일순은 ‘소멸 불안’을 느낄 때마다 이 가면을 쓰고 자기 얼굴을 감춥니다.
왜 영군과 일순은 이런 행위를 반복할까요? 영군의 틀니와 일순의 가면에는 어떤 의미가 숨어있는지 알아맞혀 보세요.
☞해답은 다음 동영상 강의에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