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결과가 맘에 안 든다고 검찰을 감정적으로 협박하는 것 같다. 정치권이 너무 검찰을 이용하려고만 한다.”
검찰의 ‘BBK 주가조작 사건’ 수사결과 발표 이후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 측이 검찰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 가자 재경지검의 중견간부는 9일 이같이 말했다.
대표적인 압박카드는 정 후보가 8일 “수사의 ABC가 빠진 발표를 국민은 믿지 않는다”며 청와대가 직무 감찰권을 행사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청와대를 통해 검찰을 압박하는 것이다.
정치권에선 정 후보의 요구엔 이른바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빅딜설’을 증폭시켜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정략적 의도가 깔려 있다는 관측이 많다. 노 대통령이 검찰의 이 후보 무혐의 결론을 유도해 퇴임 후 안전판을 마련했다는 음모론이다.
청와대가 검찰 수사에 개입하라는 정 후보의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정 후보는 검찰 독립을 외쳐 온 현 정부의 핵심 실세가 아니었던가.
검찰 내부에서는 “아무리 수사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차기 대통령 선거 투표일을 열흘도 남겨 놓지 않은 시점인데…”라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한 일부 정치권의 반발이 정략적으로 비치는 사례는 더 있다.
정 후보나 무소속 이회창 후보 측은 김경준(41·구속 기소) 씨의 지난달 국내 송환을 전후해 김 씨의 변호인을 맡겠다고 나서지 않다가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 내용이 자신들에게 불리해지자 뒤늦게 태도를 바꿨다. 이들은 김 씨를 접견한 뒤 “검사가 김 씨를 회유했다” 등 김 씨의 발언을 여과 없이 공개하고 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양 후보 측 변호사들의 김 씨 접견에 대해 “변호사의 ‘피의자 접견교통권’을 남용한 ‘막가파식 변론’”이라고 혹평했다.
김 씨 사건을 지휘했던 서울중앙지검 최재경 특수1부장은 최근 “김 씨는 A에서부터 Z까지 말이 달라졌다”며 “수사 내용은 전부 녹음 녹화되어 있다. 재판 과정에서 모든 것을 낱낱이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재판 절차가 남아 있지만 수시로 김 씨의 말이 바뀐 점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일부 정치권이 검찰을 ‘정치 검찰’이라고 비난만 할 수 있을까. 일부 정치권의 ‘검찰 흔들기’는 분명히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서고 있다.
정원수 사회부 need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