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스 박물관을 설립한 신영수 ‘티베트 박물관’ 관장이 7일 한 어촌 마을의 처녀귀신 영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어민들은 처녀귀신의 한을 달래기 위한 목재 남근 여러 개를 영정 앞에 놓아두었다고 한다. 왼쪽에 보이는 것은 티베트 밀교의 금동 합환상. 안철민 기자
이것들이 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초겨울 햇살이 눈부신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에로스 박물관. 겉모습은 박물관이라기보다는 카페에 가까웠다. ‘에로스 뮤지엄(Eros Museum)’이라는 간판이 없었다면 ‘성(性)’을 주제로 하는 박물관이라는 것을 알기 힘들 정도였다. 문을 열자마자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먼저 부탄 승려 인형의 옷가지 사이로 튀어나온 목재 남근(男根)이 눈에 띄었다. 바로 뒤로는 1m 정도 높이의 천연 남근석이 서 있었다. 온통 성 관련 물건이었다. 한국 일본 중국 태국 등의 춘화(春畵)를 비롯해 남녀의 모조 성기, 성행위 조각상 등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박물관에 전시된 성 관련 물품은 모두 1500여 점. 2003년 에로스 박물관을 만든 신영수(54) 티베트 박물관 관장은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등 아시아의 물건만으로 박물관을 꾸몄다”고 말했다.
○ 시바신의 남근-궁녀들의 성 노리개
이 박물관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은 남근이다. 목재, 석재, 청동재 등 재료도 다양했지만 새끼손가락만 한 것부터 어른 키만 한 것까지 크기도 여러 종류다. 태국의 벨트에는 다양한 크기의 수십 개 목재 남근이 매달려 있다.
이 가운데 진귀한 전시물도 있다. 대표적인 게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 있던 시바신(힌두교의 창조와 파괴의 신)의 대형 석재 남근. 1970년대 캄보디아 내전의 어수선한 틈을 타서 태국 상인에게 흘러들어간 것을 사들였다고 한다. 실제 이 석재 남근 곳곳에는 총알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어 내전의 상처를 엿볼 수 있다.
조선시대 궁녀들이 성 노리개로 사용했다는 목재 남근도 보였다. 궁궐과 가까웠던 북촌에서 발견된 것이다. 당시 궁녀들은 돈을 주고 은밀히 이 목재 남근을 구했다고 한다.
이 밖에 중국 명나라 때 환관들의 남근을 거세하는 데 쓰였던 칼과 티베트 밀교(密敎)의 금동 합환상(合歡像) 등도 볼거리였다.
○ 상품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성(性)
신 관장은 이 박물관을 만들기 위해 미국 뉴욕, 프랑스 파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중국 상하이(上海) 등 세계의 유명 성 박물관을 사전 답사했다. 외국의 성 박물관들은 모두 성의 상품화에만 치중해 있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신 관장은 “외국의 성 박물관엔 예전 사창가 사진과 여자 속옷 등만 즐비했다”며 “생명의 근원이라는 측면에서 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박물관을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에로스 박물관의 이름 뒤에 ‘생명의 근원’이라는 부제가 붙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때문인지 다양한 성 관련 물건이 전시돼 있지만 결코 외설적이지 않아 보인다. 성 관련 교양 과목을 수강하는 대학생들이 이 박물관을 많이 찾고 있다고 신 관장은 귀띔했다.
2003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처음 문을 연 이 박물관은 2004년 인사동으로 옮겼다가 올해 8월 이곳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 개인 박물관 만들기가 꿈
신 관장은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박물관을 많이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성 박물관 이외에 그가 만든 티베트 박물관(2000년) 총포 박물관(2004년) 실크로드 박물관(2005년) 생활 차 박물관(2006년) 등도 독보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내년 2월에는 우리 그릇 박물관까지 열 계획이다.
각종 물품 수집을 위해 신 관장은 1년에 10번 이상 해외에 나간다. 외부의 지원 없이 자신이 인테리어업과 고미술 중개업을 하면서 벌어들인 돈으로 박물관 설립과 물건 수집에 나서고 있다. 박물관을 세운 뒤에는 가까운 지인들에게 운영을 맡긴다고 한다.
그는 “현재 북촌 마을에 15개 정도 있는 사설 박물관을 5년 안에 30개로 늘리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화보]독일 성문화 박람회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