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태안군 앞바다에서 유출된 원유가 인근 해안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9일 오후 인근 해상에 정박한 사고 선박 허베이 스피릿호의 파손 부위에서 흰 연기가 새어 나오고 있다. 태안=김미옥 기자
■ 태안 기름유출 사고 또 인재
“삼성T-5, 응답하세요, 삼성T-5.” “….”
사고 당일인 7일 오전 5시 23분. 대산지방해양수산청 관제실은 예인선 2척이 대형 해상크레인선을 끌고 인근에 정박 중인 유조선에 접근하는 것을 발견하고 초단파(VHF) 무선으로 긴급 호출했다. 그러나 응답은 없었다. 1분 뒤 다시 호출했지만 마찬가지였다.
관제실은 자칫 위험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오전 6시 20분경 부랴부랴 번호를 알아낸 예인선 선장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 “대형 유조선이 근처에 있으니 피해서 운항하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1시간쯤 뒤인 오전 7시 15분경 크레인선은 유조선 ‘허베이 스피릿호’와 충돌했다.
해경 조사에서 대산해양수산청 관계자들은 “예인선이 호출에 응답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예인선과 크레인선을 잇는 와이어가 끊어진 상황도 보고하지 않았다”며 “조난 긴급 호출용 비상 통신인 VHF 16번 채널을 항상 켜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예인선 관계자들은 “대산항 해역의 교신 주파수인 VHF 12번을 틀어 놨기 때문에 호출을 받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산해양수산청은 당시 예인선이 지나던 항로는 대산항 해역을 벗어나 있었다고 반박했다.
대산해양수산청은 또 휴대전화로 계속 위험을 알렸어야 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관제실은 선박에 정보를 제공할 뿐 항로를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등을 지시하지는 않는다”고 해명했다.
예인선의 와이어가 끊어진 이유에 대해서도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당시 풍랑이 너무 세 와이어에 과부하가 걸리면서 끊어진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와이어를 비롯한 연결 장비가 노후했거나 불량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태안해양경찰서는 8일 대산해양수산청 관제실 관계자들을 소환한 데 이어 9일 예인선 및 부선 선장과 삼성물산 관계자 등을 소환해 과실 여부를 조사했다.
또 관제실 근무일지와 선박 항적도 등을 확보해 충돌 경위와 안전조치 이행 여부 등을 조사 중이다.
해경은 와이어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 정밀 감식을 의뢰하기로 했다.
한편 피해 어민들 사이에서 해경의 안이한 초동조치가 사고의 피해를 키웠다는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해경은 사고가 난 7일 “사고 해역이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데다 바람도 바다 쪽으로 불어 해안으로 유입되는 원유는 많지 않을 것”이라며 “시뮬레이션을 통해 기름 이동을 예측한 결과 사고 발생 24∼36시간 정도 후에 기름이 해안에 밀려올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유출된 기름은 사고가 발생한 지 13시간여 만인 7일 오후 9시경 충남 태안군 소원면 천리포와 만리포 등의 해수욕장에서 발견되기 시작했다.
어민들은 또 해경이 어민들의 신고를 받고도 “사고 해역에 오일펜스를 쳤으니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답변만 했다고 주장했다.
김화문(61·태안군 소원면 의항2리) 씨는 “어민들이 7일 오후 9시경에 해경에 신고를 했고 그 뒤에도 수차례 신고했지만 해경 측에선 묵묵부답이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소원면 모항리 어민들은 “어민들이 사고 당일 밤 해경에 어선을 동원해서라도 도와줄 일이 없느냐고 문의했지만 아직 별문제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며 “다음 날 아침 자체적으로 30여 명을 항구에 집결시킨 뒤 방제 작업에 나서려 했지만 흡착포 등 방제 도구가 도착하지 않아 오전 11시까지 손을 놓고 기다려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해양경찰청 이봉길 해양오염관리국장은 “방제 작업 초기에 다소 미흡한 점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태안=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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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 김동주 기자
촬영 : 김동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