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급제 대입전형 묘수 없나…” 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진선여고에서 열린 입시설명회에 수험생과 학부모 등 2500여 명이 몰려 최근 극심한 혼란을 초래하고 있는 대학수학능력시험 등급제에 따른 입시 전략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안철민 기자
《‘말 많은 등급제를 당장 개선할 수 없는 것일까.’
200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발표 이후 등급제의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지만 교육인적자원부는 “수능 등급제의 취지를 잘못 이해한 것”이라며 당장 바꿀 수는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입시정책을 바꿀 때는 최소한 3년 전에는 예고해야 한다는 등의 이유를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은 참여정부의 핵심 교육정책인 수능 등급제의 문제점을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시하는 정권의 분위기 때문에 눈치를 보는 측면이 크다.
▽1점차로 한 등급 아래는 가혹=수능 성적 분포를 언뜻 보면 일부 영역이나 과목의 난이도가 정상분포를 벗어난 것을 제외하면 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간단치가 않다. 종전에는 한 문제 또는 1점 차로 등급이 갈리더라도 표준점수와 백분위도 제공했기 때문에 등급이 수험생의 당락을 좌우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완전 9등급제에선 등급 외엔 학생의 실력을 변별할 기준이 없어 등급의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변했다.
교육당국은 문제점에 대한 언급을 꺼리고 있지만 문제점은 인식하는 분위기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한 관계자는 “등급제 결과를 내놓고 보니 안팎에서 ‘적어도 종전처럼 표준점수와 백분위 같은 기본 정보는 제공하는 식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등급제를 옹호할 수밖에 없는 교육부 내부에서도 “우리가 직접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제도 개선을 위한 여론이 만들어지면 검토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3년 전 예고” vs “얼마든지 개선 가능”=교육부는 고등교육법 시행령이 입시 1년 6개월 이전에 전형기본계획을 발표하도록 하고 있어 2009학년도 수능은 지금처럼 치러야 한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고교에 입학하기 전에 정책을 예고해야 학생들이 이에 맞춰 대비할 수 있다”며 “교육정책을 수시로 바꿀 경우 큰 혼란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시행령이나 고시를 고쳐서라도 수능 개선안을 빨리 내놓는 것이 혼란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1994학년도 수능 첫해에는 시험을 연 2회 실시했다가 난이도 논란이 일자 다음 해에 바로 1회 실시로 바꾼 전례가 있다.
고려대 박유성 입학처장은 “입시설명회를 할 때마다 ‘1점 차로 등급이 갈린 자녀의 억울함을 구제해 달라’고 호소하는 학부모가 부지기수”라며 “대학이 자율적으로 학생들의 실력을 평가할 수 없는 상황에선 수능 등급을 세분화하거나 수능 횟수를 늘리는 것이 부족하나마 대안”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선 교사들과 대학 입학 관계자들은 지금 대입 제도를 전면 개정하면 혼란이 예상되므로 2007학년도 수능의 표준점수 및 백분위 표기 체제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밝혔다.
김영일 중앙학원 원장은 “수능 한 번으로 학생의 운명을 가르는 것은 가혹하다”며 “표준점수 체제가 있는만큼 9월, 11월 두 번 치러 평가 기회를 더 줘야 한다”고 말했다.
▽분노에 찬 입시설명회=9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진선여고에서 청솔학원이 개최한 입시설명회에는 수용 가능 인원 2000명을 넘어선 2500여 명이 몰렸다.
수험생들은 한 문제만 틀려도 2등급이 되는 수리 ‘가’ 영역의 난이도 조절 실패를 중심으로 등급제 수능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교육부와 청와대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자녀가 수리 ‘가’에서 3점짜리 문제를 하나 틀려 2등급을 받았다는 오모(서울 송파구 잠실본동) 씨는 “모의평가에서 항상 1등급을 받던 아들이 단 한 문제 때문에 지원 대학을 턱없이 낮추게 됐다”며 “다른 영역을 아무리 잘 봐도 한 영역만 삐끗 하면 엉망이 되는 것이 등급제의 본질”이라고 분노했다.
수험생들은 등급 외에 원점수와 등급 구분점수가 공개되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도 컸다.
최모(18) 양은 “등급 외에 아무 정보도 공개하지 않으니 정부 발표 자체를 믿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선택과목이 있는 수리 ‘가’형의 경우 같은 원점수로도 다른 등급을 받았다는 수험생들의 이의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미분과 적분, 확률과 통계, 이산수학 등 3개의 선택과목 사이에 난이도를 조정하기 위해 표준점수를 적용한 탓에 어떤 과목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것이다.
수험생들이 즐겨 찾는 입시 관련 사이트 ‘오르비스 옵티무스’ 등에는 등급제가 실력과 노력을 왜곡한다며 ‘등급제 피해모임’ 게시판을 만들고 집단소송이나 불복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등급제를 유지하면 재수생이 크게 늘어날 것이란 우려도 많다. 의대나 한의대를 지망했지만 수리 ‘가’형에서 한 문항을 틀려 1등급을 받지 못한 수험생 중에는 벌써 재수 학원에 등록을 문의하는 사례가 많다.
종로학원 김용근 평가이사는 “최상위권 재수생이 늘면 재학생들은 1등급을 받기가 더 어려워져 등급제 부작용이 해마다 누적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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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 원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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