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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71년 첫 민방공 훈련 실시

입력 | 2007-12-10 02:59:00


‘적기(敵機) 4대가 서울 상공에 나타나자 경계경보는 공습경보로 바뀌었다. 공무원들은 비상서류와 함께 구호장비를 들고 지하도로 대피하기 시작했다.’

1971년 12월 10일 오전 10시 전국에 요란한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북한군의 주력 전투기인 미그기의 내습을 알리는 경계경보였다.

다행스럽게도 실제 상황은 아니다. 광복 뒤 처음 실시된 민방공 훈련이었다. 당시 동아일보는 이날의 풍경을 이렇게 전했다.

‘시민들은 경계 및 공습경보가 내려질 때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기도 했으나 이미 보도를 통해 알고 있는 듯 별로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그러나 공습경보가 요란하게 울리자 일부 시민의 발걸음이 빨라지기도 했으며 다소 긴장의 빛이 감돌기도 했다.’

민방공 훈련은 안보와 반공이 강조되던 시대 상황의 산물이었다.

1970년 군사훈련인 을지연습이 실시됐을 때 북한의 무력공격에 대비한 민간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돼 이듬해 말 서울과 인천, 강원 춘천지역에서 시범 실시된 것이다.

정식 훈련이 이뤄진 것은 1972년 1월 15일. 전국의 관공서와 회사, 군부대 등에서 60여만 명이 적의 공습에 대비한 고층 건물의 화재 소방 활동과 인명구조 훈련에 참가했다.

1975년에는 민방위기본법이 제정되면서 민방공 훈련은 각종 재난대비 훈련과 함께 민방위 훈련의 근간을 이루게 됐다.

“국민 여러분, 여기는 민방위 훈련본부입니다. 지금 경계경보를 발령합니다.”

이후 민방위의 날인 매달 15일이면 가상의 적기가 출현했다며 교실 스피커를 통해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학생들은 책상 밑에 들어가 숨을 죽이며 해제경보가 울릴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가끔은 화생방 공격에 대비한다며 비닐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요즘 민방위 훈련 가운데 민방공 훈련은 국제정세와 남북관계의 흐름에 따라 대폭 축소됐다. 그 대신 지진과 태풍, 폭설 등 재해에 대비하기 위한 재난대비 훈련은 늘고 있는 추세다.

일각에서는 민방공 훈련을 폐지하자는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하지만 남북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안보 현실은 민방공 훈련이 처음 실시된 1971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