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에서 포인트 가드는 흔히 ‘야전사령관’에 비유된다. 코트에서 전술을 진두지휘하고 때론 결정적인 상황에서 스스로 해결사 노릇까지 맡아서다. 1997년 프로농구 출범 후 챔피언에 오른 팀에는 꼭 걸출한 포인트 가드가 있었으며 시대에 따라 그 특성도 변해 왔다.》
원년 챔피언 기아는 ‘코트의 마법사’ 강동희(41)의 활약이 돋보였다. 당시 이미 30세를 넘긴 나이였지만 눈부신 개인기로 코트를 화려하게 수놓았다. 유난히 높게 솟구쳤던 3점슛이 인상적이었던 그는 평균 15점 이상을 넣어 공격형 가드로도 유명했다.
그 다음으로는 ‘컴퓨터 가드’ 이상민(35)이 자신의 시대를 활짝 열었다. 현대를 2년 연속 챔피언으로 이끈 그는 조니 맥도웰, 재키 존스 등과 절묘한 콤비 플레이를 펼쳤고 상대 수비가 손 쓸 틈조차 주지 않는 속공이 일품이었다.
2000년대 들어선 오리온스 김승현(29)의 시대였다. 김승현은 마르커스 힉스라는 최고 용병과 손발을 맞춰 신인 때부터 우승반지를 끼었다. 현란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깨뜨리거나 마치 눈이 뒤통수에도 달린 듯한 절묘한 어시스트는 그만의 장기였다.
강동희 이상민 김승현이 타고난 경기 감각을 지녔다면 모비스를 2년 연속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끈 양동근과 올 시즌 KT&G 상승세를 주도하는 주희정은 뒤늦게 정상급 가드의 반열에 올라선 ‘노력파’로 불린다.
‘파워 가드’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든 양동근은 강력한 체력과 끈질긴 수비로 선배 가드들을 하나 둘 제압해 나갔다.
올 시즌 주희정은 최고 전성기라는 찬사를 듣고 있다. 이상민과 김승현 신기성(KTF) 등이 주춤거리는 사이 주희정은 평균 12.6득점, 4.5리바운드에 어시스트는 프로 데뷔 10년 만에 최고인 8개. 외곽 공격이 약하다는 핸디캡마저 극복했다. 주희정은 통산 트리플 더블을 7차례 기록해 국내 선수로는 현주엽(LG)과 공동 1위에 올라 있을 만큼 ‘팔방미인’.
선두 동부는 가드 표명일이 부상 후유증에 시달리며 지난 주말 2연패로 상승세가 꺾였다.
KCC는 신인 가드 신명호가 양동근 스타일의 파워 있는 플레이로 활력을 넣어 주면서 2위까지 내달렸다.
SK는 신인 가드 김태술이 평균 9.3어시스트로 선두를 달리고 있기는 해도 아직 중량감이 떨어지고 용병의 부진이 고민거리. 양동근이 입대한 모비스와 김승현이 부상으로 빠진 오리온스는 하위권에 처졌다. 올 시즌 역시 가드의 표정을 보면 그 팀의 성적을 대충은 짐작할 수 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