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갈참나무예요. 가을 늦게까지 잎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요. 잎이 마른 채 달려 있는 걸 보니 가을 보내기가 무척 아쉬운 가 봅니다.”
8일 오후 대구 수성구 시지동 천을산(天乙山). 원로 수필가인 견일영 전 경북고 교장과 대구불교문인협회장인 이원우 지산중 교장 등 시인 수필가 직장인 주부 등 4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대구문인협회의 동아리인 ‘나무산길모임’ 회원들. 매월 두 번째 주말에 모여 가벼운 산행을 하면서 나무를 보듬는 조촐한 모임이다.
2004년 여름에 나무를 아끼는 몇 명이 ‘나무를 찾아서 나를 찾아서’라는 인터넷 카페를 개설한 이후 지금껏 이어 오고 있다. 그동안 회원도 전국에서 1200여 명으로 불었다.
고산초등학교 교정에 모인 이들은 해발 120m가량의 나지막한 천을산에 오르면서 초겨울 산의 풍경을 마음에 담았다.
이날 산행은 동화 ‘원숭이 꽃신’의 작가인 정휘창(78) 선생이 맡았다. 그는 천을산 중턱의 사찰인 증심사에 글방을 마련하고 날마다 이 산을 산책한다.
그는 “‘천을’은 북극성 주변 별 이름에서 생긴 말”이라며 “중국 고대 상(商)나라를 세운 탕왕의 이름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참석한 사람들은 참나무 잎이 가득 쌓여 바스락거리는 산길을 오르면서 참나무 소나무 등과 ‘대화’를 나눴다.
이 모임의 심후섭(54·대구학남초교 교장) 회장은 미니 마이크를 허리에 차고 나무도 생각을 하고 자신을 지키며 사람도 살린다면서 ‘나무의 삶’을 이야기했다. 심 회장은 최근 나무에 관한 동화를 펴낸 아동문학가.
그는 “나무의 삶은 인생과 닮았다”며 “이런 나무를 본받으며 분주한 일상에서 한발 물러나 자신을 살짝 돌아보는 게 나무산길모임”이라고 소개했다.
회원들은 지난달에는 경북 경산시 계정숲에서 나무를 만났으며 10월에는 대구 동구 봉무동 단산지를 둘러싼 나무를 보듬기도 했다.
‘홀로서기’로 널리 알려진 서정윤(50·대구 영신고 교사) 시인은 “지나가는 가을에 손이라도 흔들어 주면서 그저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라며 “다음 달 모임에는 주위의 이웃들과 부담 없이 참여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애림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성명자(49·여·대구 서구 평리동) 씨는 제대를 앞두고 마지막 휴가를 나온 아들과 함께 참가하기도 했다.
성 원장은 “낙엽이 수북이 쌓인 천을산을 걷는 기분이 묘했다”며 “‘어린 나무들’(어린이집 아이들)이 훗날 반듯한 금강송처럼 자라도록 보살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밝혔다.
나무산길모임의 다음 달 일정이나 회원 소식은 인터넷 카페(cafe.daum.net/naamuu)에서 확인하면 되는데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