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 3월 12일 국회 본회의장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온몸으로 이를 저지했던 정동영 의장 등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국회의장 단상을 향해 구두, 명패, 책, 서류뭉치 등을 마구 집어던졌다. 정 의장은 “지금이 5공이야?”라며 울부짖었고, 격렬하게 저항하던 유시민 의원은 구두 한 짝이 없는 상태에서 본 회의장 밖으로 들려 나갔다.
# 2007년 12월 11일 국회 예산결산특위 회의장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총회에서 김효석 원내대표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BBK 주가조작 사건’ 수사검사들을 상대로 대통합민주신당 측이 제출한 탄핵소추안 보고를 물리적으로 막기로 한 사실을 비난했다. “국회는 몸을 쓰는 곳이 아니다. 국회는 민주적 절차에 따라 의안이 발의되면 본회의를 열어 보고하는 게 국회법이 정한 절차다. 국회가 어디 조직폭력배 몸 쓰는 자리냐.”》
국회에서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 3년 8개월여가 지난 2007년 12월 국회에서는 탄핵소추안을 놓고 한나라당과 대통합민주신당이 다시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탄핵으로 시작한 17대 국회가 다시 탄핵으로 마무리되고 있는 셈이다.
이번에는 검찰 탄핵소추안이라는 점에서 대상에는 차이가 있지만, 2004년 총선 직전 한나라당처럼 대통합민주신당 역시 정치적 명운이 걸린 전국선거를 앞두고 탄핵카드를 ‘승부수’로 던졌다는 점에서 상황이 비슷하다.
▽역풍 몰고 온 16대 국회의 탄핵=16대 국회 말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주도한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엄청난 역풍을 안겼다.
당시 각 방송은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격렬하게 저항하다 끌려나가는 장면을 반복해 보여 줬고 이는 국민의 공분(公憤)으로 이어졌다. 열린우리당은 탄핵 직후 여론이 유리하게 전개되자 탄핵을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비판하는 단골 메뉴로 사용했다.
결국 4월 15일 실시된 17대 총선에서 급조 정당인 열린우리당은 ‘탄핵 풍’을 타고 152석이라는, 생각지도 못했던 수확을 거두고 원내 1당으로 올라선 반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참패했다. 탄핵 바람 덕에 금배지를 단 열린우리당 초선 의원 108명은 나중에 ‘탄돌이’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다시 등장한 탄핵=이번에는 공수가 뒤바뀌었다.
‘BBK 주가조작 사건’에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가 연루됐다는 의혹을 끊임없이 제기하며 검찰이 수사만 하면 불리한 판세가 ‘한 방’에 바뀔 것으로 기대했던 대통합민주신당은 검찰이 이 후보에 대한 ‘무혐의’ 수사 결과를 내놓자 즉각 검찰을 규탄하며 수사검사들을 탄핵하고 나섰다.
정동영 후보는 10일 강원도 유세에서 “정치검찰이 상식을 배반했기 때문에 탄핵을 통해 옷을 벗기려는 것이다. 공분과 분노가 5000만 국민에게 전달되고 9일 밤낮 동안 위대한 국민의 잠재력이 폭발할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대통령 탄핵안에 대해 ‘헌정질서 파괴’라고 맞섰던 2004년과는 정반대로 이번에는 수사검사들에 대한 탄핵안을 밀어붙여 전통적 지지 세력을 결집해 보겠다는 계산이다.
▽‘탄핵의 추억’ 성공할까=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탄핵은 법적으로 보나 윤리적으로 보나 근거가 없고, 대선용이라는 것을 삼척동자도 알고 있을 것”이라며 “이번에는 탄핵안이 대통합민주신당에 역풍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통합민주신당의 한 당직자도 “대선이 열흘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검찰 탄핵을 통한 극단적인 외부 변수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탄핵소추안 발의가 ‘패배주의’에 사로잡힌 의원들을 다잡기 위한 내부단속용이라는 분석도 있다.
대통합민주신당의 한 의원은 “대선이 열흘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자칫 의원들마저 뿔뿔이 흩어질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의원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강력한 전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이승헌 기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