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11테러 직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십자군 전쟁(Crusade)’이라고 표현했다.
‘십자군’이라는 말 한마디에 이슬람 세계는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파문이 일자 백악관은 ‘단순한 말실수’라고 해명했지만 이슬람 세계를 계몽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은 감춰지지 않았다. 십자군 전쟁을 바라보는 양측의 시선이 완전히 다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독교 쪽에서는 십자군 전쟁을 성지(聖地)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한 성스러운 전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슬람의 눈에 비친 십자군은 ‘잔학무도한 침략자’일 뿐이었다.
200년 가까이 계속된 십자군 원정 내내 십자군의 잔혹성은 이슬람 세계에서 널리 악명을 떨쳤다. 그중 1098년 시리아의 소도시 마라에서는 전체 이슬람교도를 전율하게 만든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1095년 출정한 제1차 십자군이 예루살렘으로 가던 도중 마라에 도착한 것은 1098년 11월 말. 십자군은 몇 차례의 공방전 끝에 12월 12일 마라를 함락시켰다.
곧이어 살육과 약탈이 시작됐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2만 명이 넘는 사람이 학살당했다. 살육과 약탈은 당시 십자군으로서는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때 마라에는 먹을 것이 충분치 않았다. 추운 날씨에 배고픔을 참지 못한 십자군들은 자신들이 쓰러뜨린 이슬람교도를 제물로 삼았다.
한 십자군 기사는 교황 우르바누스 2세에게 보낸 편지에서 “지독한 기근 때문에 사라센인들을 먹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라고 털어놨다.
이 사건은 당시 아랍인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이후 수백 년이 흐르는 동안 이슬람 세계의 문학작품에서 십자군의 주력이었던 프랑크인은 식인종으로 묘사됐다.
공쿠르상 수상 작가인 아민 말루프는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이라는 책에서 한 십자군 연대기작가의 글을 인용해 십자군의 이슬람교도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지적했다. “우리(십자군)는 튀르크인과 사라센인뿐 아니라 심지어 개까지 잡아먹었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귄터 그라스가 부시 대통령에 대해 “역사에 대한 무지를 드러냈다”고 말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던 셈이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