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 북면 도대리 ‘무지개 서는 마을’
눈밭 사이로 텐트 20여 동이 둥지를 틀었다. 밤나무 사이에 자리 잡은 텐트의 연통에서는 눈처럼 하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토요일인 8일 오후 6시 경기 가평군 북면 도대리의 밤나무 농장인 ‘무지개 서는 마을’의 풍경이다. 일찍 찾아온 밤 그림자 때문에 주변은 캄캄했지만 텐트 주변을 밝힌 등불 덕택에 올해 서울에서는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던 눈이 제법 두껍게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낮에 눈싸움으로 하루를 보낸 아이들은 저녁밥을 한껏 먹었다. 화로 위에서 지글거리던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개와 소금이 뿌려진 장어는 순식간에 없어졌다.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겨울 캠핑을 즐기는 것은 한국 캠퍼들의 독특한 문화다. 추운 날씨에 어떻게 캠핑을 하는지, 아이들은 캠프장 안팎에서 무엇을 하고 노는지 살펴봤다.
○텐트 안에 나무난로 설치해 추위 걱정 없어
텐트 안에는 나무를 때는 나무난로가 있었다. 옛날 시골 초등학교 교실에서 사용하던 것이 크기만 줄어든 형태다. 연기는 교실의 나무난로처럼 연통을 설치해 빼낸다. 나무난로의 연통은 일단 옆으로 뻗어나가 텐트 바닥 부분으로 빠져나간 후 텐트 바깥에서는 수직으로 세워지는 ‘L’ 모양이다. 연통이 텐트를 빠져나갈 때 천에 닿지 않도록 해주는 것은 삼각형 모양의 틀. 캠퍼들의 아이디어로 만든 것이다.
밤에 잠을 잘 때는 침낭 속에 탕파(湯婆)를 넣고 잔다. 뜨거운 물을 넣어서 온도를 높이는 기구다. 자라 모양을 닮아 ‘자라통’이라고도 불린다. 자주 쓰는 ‘유단포’는 일본말이다.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전기장판을 함께 사용한다. 겨울철 캠프장을 선택할 때 캠퍼들이 전기가 들어오는지를 따지는 이유다.
준우(9) 준서(7) 두 아들을 데리고 금요일 밤을 보낸 홍연기(40) 백육현(36·여) 부부는 “전기장판으로 바닥의 냉기를 차단하고 침낭을 활용해 아이들과 함께 춥지 않게 겨울밤을 보냈다”고 말했다. 이 부부는 캠프장 분위기에 반해 올해 8월부터 오토캠핑을 시작했는데 겨울 캠핑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거실형 텐트는 하부가 바닥과 붙어 있지 않고 상부에는 곳곳에 환기창이 있다. 외부 공기가 유입돼 순환하기 좋은 구조다. 물론 그 옆에 연결되어 있는 침실형 텐트는 하단부가 막혀 있어 찬바람을 막는다.
그러나 거실형 텐트 안에서 조리용으로 나온 숯을 태우는 것은 질식의 우려 때문에 위험하다. 난방기구는 일단 잠이 들기 전 끄고 자는 것이 안전하다. 외국에서는 사냥용 텐트를 치는 일부 캠퍼들이 겨울 캠핑을 하는 정도지만 한국의 캠퍼들은 뜨거운 물을 순환시키는 ‘간이 보일러’까지 만들어 캠핑을 즐기고 있다. 텐트 바깥에서는 화로를 사용할 수 있어 추위 걱정은 없다. 웬만큼 춥더라도 장작불을 쬐고 있으면 추위는 가고 겨울밤의 운치만 남는다. 식사를 할 때는 화로 위가 바로 식탁이 된다.
○아늑한 텐트 속 공간… 아이들은 보드게임 삼매경
8세 아들을 둔 이은주(37) 씨는 ‘준비된 놀이 엄마’다. 캠핑 기간 동안 자신의 아이나 이웃의 아이들과 함께 즐길 놀이를 준비해 온다. 대형마트에 가서 목공용 풀을 사고 집에 있던 실톱을 가져와서 아이들에게 만들기 놀이 시간을 선사한다. 잔가지를 요리조리 잘라 잠자리, 애벌레, 달팽이 등 다양한 모양을 만들어 낸다. 냇가에 놀러 가면 마음에 드는 돌멩이를 주워 오라고 해서 그 위에 크레파스로 그림 그리기 놀이를 한다. 자신이 주워 온 돌멩이 모양을 보고 어떤 것을 그리면 좋을지 생각해 보라고 주문하면 아이들만의 창의력이 튀어나온다는 것이 이 씨의 말. 돌멩이 그림을 모아 캠프장 한곳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는 캠프장 아이들에게 영어 캐럴을 가르쳤다. 그리고는 저녁 시간 캠프장의 공동 행사 때 진행자의 도움으로 5분 동안 ‘깜짝 합창 공연’을 가졌는데 참석자들로부터 큰 환호를 받았다. 중학생 아들딸과 함께 캠핑을 다니는 조용찬(42) 씨는 인터넷 등 ‘디지털형 놀이’를 추구한다. 전기가 들어오기 때문에 무선인터넷을 이용한 웹서핑도 허락하고 있다. 물론 아이들은 텐트 안에서 책도 읽고 보드게임도 즐긴다.
반면 일체의 장난감을 가져오지 않고 ‘자연형 놀이’를 추구하는 아빠도 있다. 박연수(40) 씨는 “자연과 접촉을 늘릴 수 있도록 집에 있는 장난감은 일부러 가져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9세, 13세 된 두 아들은 아빠의 장작패기를 도우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아이들은 주변에 언덕이 있으면 비닐 포대를 깔아서 눈썰매를, 얼음이 언 냇가가 있으면 썰매를 즐긴다. 도토리 같은 나무 열매를 주워 목걸이를 만들기도 하고, 열매의 단면을 잘라 도장을 만드는 놀이도 단골메뉴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서 따뜻한 텐트 안에서 장기나 체스, 보드게임을 즐기는 가족도 많다. 아이들 숙제를 들고 와서 공부하는 시간도 갖는다는 백육현 씨가 말했다. “캠핑은 ‘일탈 속에서 진행되는 일상’ 같아 즐겁다. 월요일만 되면 주말 캠핑이 기다려진다.”
가평=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촬영: 박영대 기자
■오토캠퍼 홍혜선의 Follow Me!
캠핑 에티켓을 지키려면…밤 10시 이후는 ‘정숙의 시간’
캠프장은 사교의 장이다. 정다운 이웃사촌처럼 밝게 인사를 건네고,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에 반해서 오토캠핑을 시작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캠프장에서 사생활을 유지하는 일은 힘들다. 얇은 천 조각만으로 생활공간을 분리해야 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열린 공간에서 보내기 때문이다. 이런 여건은 캠프장을 함께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 묘한 동질감을 형성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절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즐거운 사교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에티켓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선 ‘정숙의 시간(Quiet hours)’을 들 수 있다. 외국의 캠프장에서는 대부분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를 정숙의 시간으로 정하고 있다. 떠들썩한 그룹 캠핑으로 시작된 우리의 캠핑 문화에서는 이런 개념이 적었던 것이 사실이다. 금요일 저녁 늦게 회합을 하면 으레 술을 한잔씩 하며 밤늦도록 얘기꽃을 피우곤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가족캠핑이 일반화되고 있어 정숙의 시간이 갖는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과음을 하면 목소리가 높아진다.
정숙의 시간이 뜻하는 것은 ‘오후 10시가 되었으니 모두 잠자리에 들라’는 것이 아니라 ‘오후 10시면 잠자리에 드는 이웃을 위해 목소리를 줄이라’는 의미다. 얇은 천 조각을 사이에 두고 이웃이 되는 캠프장의 특성을 고려하면 늦은 밤 목소리를 한 톤 낮추는 일은 캠핑 에티켓의 출발선이다. 물론 지금도 밤에 단체 행사를 가질 때는 박수를 쳐야 하는 일이 발생하는데 손바닥이 엇갈리게 해 소리는 나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다.
아울러 여건이 된다면 옆 텐트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약 5m의 여유를 두고 텐트를 치는 것이 예의다. 다른 캠퍼의 텐트 친 공간을 가로질러 다니는 일은 가능한 한 피하는 것이 좋다.
또 애완견은 출입이 허용된 캠프장에만 동반한다. 자연에 대한 예의도 사교의 장을 건전하게 유지하는 한 축이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 ‘리브 노 트레이스(Leave no trace)’ 얘기다.
슬캣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