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재산이 엄청나면서도 웬만해선 돈을 잘 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축구협회에서 한 면만 쓴 종이를 버리는 게 목격되면 불호령이 떨어집니다. 이면지로 중요 결재서류를 올리기도 합니다.
이 때문인지 축구계 일부에서 정 회장이 돈을 안 쓴다는 말이 나옵니다.
“축구협회가 매년 수백억 원의 돈을 벌기 때문에 이젠 기업인이 아니라 축구인이 회장을 해도 된다”고까지 말합니다.
하지만 정 회장이 축구에만 쓰는 돈이 매년 500억 원이 넘는다는 사실은 간과합니다. 정 회장이 대주주인 현대중공업 산하에 프로팀 울산 현대와 실업팀 현대미포조선이 있습니다. 이 두 팀에서 매년 최대 300억 원 정도를 씁니다.
정 회장은 또 축구 저변을 위해 필요할 때마다 팀을 창단했습니다. 현대학원 산하에 현대중, 현대고, 울산대(이상 남자), 현대청운중, 현대정보과학고, 울산과학대(이상 여자)가 있습니다.
또 울산 지역의 초등학교(7개), 중학교(3개), 고등학교(1개)에 운영비를 보조하고 있고 축구 붐 조성을 위해 연중 대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4월부터 11월까지는 중고교 주말리그, 10월에는 울산현대단장기 초등학교 축구대회, 11월에는 조기축구회의 잔치인 처용컵과 어머니 축구대회를 열고 있습니다. 현대중공업의 한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아마추어 팀에 들어가는 돈도 연간 200억 원에서 300억 원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정 회장은 일본이 단독 개최하려던 2002 월드컵을 공동 개최로 바꾼 인물입니다.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으로 세계청소년대회도 유치했습니다. 10개의 월드컵경기장이 건설됐고 전국에 권역별 축구센터와 축구공원 등 천연 잔디 구장이 수십 개 늘어났습니다. 이젠 인프라 면에서 선진국에 크게 뒤지지 않는 상태가 됐습니다.
정 회장의 임기를 1년 남겨 두고 벌써 축구계에서 말이 많습니다. “국제축구계의 거물인 정 회장이 계속 해야 한다”는 쪽과 “이젠 축구인 출신이 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섭니다.
한 축구 전문가는 말합니다. “축구인들이 차기 회장이 누가 되느냐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정 회장을 축구 발전에 어떻게 활용할지를 고민하는 게 먼저”라고.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