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되겠다던 MBC 청룡의 꿈은 1989년 12월 14일 막을 내렸다. 계속된 성적 부진과 모기업인 방송사의 자금 압박으로 원활한 구단 운영이 어려운 데다 공영방송으로서 프로야구를 육성할 의의가 없다는 노조의 압력에 따라 매각을 전격적으로 결정하게 된 것이다. 이 결정으로 MBC 청룡은 국내 처음이자 마지막 언론사 소유 프로구단으로 남았다.
MBC 청룡을 인수한 럭키금성은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할 때부터 창단을 원했지만 기회를 잡지 못했다. 1984년부터 프로축구단을 운영해 온 럭키금성은 씨름과 배구 테니스 조정 등 5개 종목을 육성했는데 프로야구가 기업 홍보에 큰 효과가 있다고 판단해 1987년에는 제8구단 창단을 기획하는 등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 왔다. MBC 청룡이 어렵다는 소식에 럭키금성이 바로 인수자로 나선 것이다.
럭키금성은 당시로선 파격적인 100억 원에 방송 협찬금 30억 원을 주고 구단을 인수했다. 값을 후하게 쳐준 데는 서울 연고 구단이라는 이점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럭키금성은 기업명을 LG로 바꾸고 새로운 도약을 꿈꾸던 시절이었다. MBC의 매각 결정 후 협상 끝에 1월 공식 출범한 구단명은 LG 트윈스. 럭키금성의 스포츠팀 중 가장 먼저 LG 마크를 달았다.
LG는 구단을 인수하자마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MBC 청룡 시절인 1987년 5위, 1988년 6위, 1989년 6위 등 하위권을 헤매던 팀을 바꾸기 위해선 변화가 필요했다. 다행히 당시 LG는 김재박 이광은 김상훈 김용수 정삼흠 김태원 등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즐비해 ‘가만히 놔두기만 하면 3위는 한다’는 평가를 받던 터였다. LG는 선수들의 연봉을 두 배 가까이 인상하며 독려했다. 이에 선수들은 특유의 ‘신바람 야구’로 화답하며 창단 첫 해 곧바로 정상에 올랐다. 이후 ‘신바람 야구’는 LG의 팀 컬러가 됐고 LG는 가장 많은 팬을 거느린 인기 구단이 됐다.
스포츠 마케팅 전문가들은 그룹명을 바꾼 LG가 야구단을 인수한 첫 해 우승을 함으로써 수조 원의 파급 효과를 얻었다는 보고서를 쏟아냈다. 야구단은 그룹 전체의 이미지 변신에도 영향을 미쳤다. LG 트윈스의 탄생은 스포츠 마케팅의 기념비였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