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힘든 일이 있다면 태극마크를 달고 한국 양궁대표팀선수로 활약하는 것이다.
올림픽에서만 13개의 금메달을 획득한 한국대표팀에 발탁 되는 것만으로도 세계선수권대회나 올림픽 금메달에 가까워질 수 있다.
어린 선수부터 베테랑 선수까지 “세계대회보다 국내 선발전이 더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대표팀 코칭스태프도 “모두 뽑았으면 좋겠다. 떨어진 선수를 보면 너무 안타깝다”는 말을 되풀이 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때문에 실수와 방심은 한 순간도 허락되지 않는다. 올림픽에서 3개의 금메달을 따낸 여자양궁의 간판스타 윤미진도 소속팀 문제로 방황하는 사이 대표팀에서 탈락하는 아픔을 맛봤다. 게다가 최근 들어서는 신체 조건이 좋아진 어린 학생들이 무서운 성장속도로 선배들을 위협하고 있다.
베이징올림픽 전종목 금메달을 노리고 있는 한국은 최근 3차에 걸친 선발전 끝에 남녀 각각 8명의 선수를 선발했다.
여자대표팀에는 아테네 올림픽 2관왕 박성현(전북도청)을 비롯해 2007 양궁월드컵 은메달의 주인공 최은영(청원군청)이 이름을 올렸고 이현주(순천대), 이특영(광주체고) 등 어린 선수들이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남자대표팀에서는 아테네올림픽 단체전 금메달의 주인공 박경모(계양구청), 장영호(예천구청), 임동현(한국체대)이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는 가운데 노장 김보람(두산중공업), 이승용(울산남구청), 이창환(두산중공업)이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올림픽무대는 3명만 밟을 수 있다. 때문에 아직도 어느 선수가 최종선수명단에 이름을 올릴지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떤 선수가 올림픽에 출전하더라도 남녀 모두 금메달을 노릴 수 있을 만큼 두터운 선수층을 자랑한다는 사실. 에이스가 사라져도 새로운 에이스가 나타나는 한국양궁이야말로 마르지 않는 샘이 아닐 수 없다.
▼‘포스트 김수녕-오교문’ 꿈꾸는 10代 3인방
최고의 선수들로 구성된 이번 대표팀에는 여느 때보다 어린 선수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대표팀 최연소 선발 기록을 갈아 치운 곽지예(대전체중)는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는 소녀. 남자대표팀 최고참인 김보람과는 20살 이상 차이가 난다.
남자대표팀은 비교적 연령층이 높은 편. 오랫동안 대표팀에서 활약한 김보람, 장용호, 박경모 등 30대 선수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다. 하지만 남자대표팀에도 고등학생인 김재형(순천고)과 김명수(함열고)가 선배들과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남자대표팀을 지도하고 있는 전인수 코치는 어린 선수들이 선발된 것에 대해 “고참 선수들이 주축이 됐던 예년과 달리 이번에는 어린 선수들이 많이 선발됐다. 이는 한국양궁의 저변이 넓어지고 있으며 더 많은 발전이 이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여자대표팀 구자청 코치도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선수들의 기량을 낮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 경험을 쌓는다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기량을 보여줄 것”이라고 어린 선수들을 칭찬했다.
그러면서도 구 코치는 “어린 선수들이기 때문에 기복이 심하고 환경 변화에 흔들리기 쉽다.양궁에 전념하겠다는 의지를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충고했다.
당당히 대표팀 엔트리에 포함돼 ‘포스트 김수녕-오교문’을 꿈꾸는 곽예지, 김명수, 김재형을 태릉선수촌에서 만났다.
언론의 조명과 ‘최연소’라는 수식어에 어색함을 보이고, 장난을 종아 하는 모습이 다른 중고생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굳은살이 박혀 있는 손과 진지한 훈련 장면에서는 세계정상에 머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먼저 학교와 친구들을 떠나 선수촌에서 생활하는 게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대표팀 선발과 올림픽 출전을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양궁에만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곳에 신경 쓸 여유가 없습니다.” (재형)
“선수촌에 들어오면서 그런 점은 각오했어요. 선배님들과 지내는 것도 즐겁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괜찮아요.”(예지)
“최고의 선수가 된 후에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크게 어려운 점은 없습니다.”(명수)
대표팀 선발과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목표가 있어 다른 학생들이 누리는 즐거움을 갖지 못해도 괜찮다는 반응이었다.
‘최연소’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에 대해서는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약간 부담스럽긴 하지만 훈련에 충실하고 열심히 배우면 된다. 그런 점보다 형들과 나이차가 많아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명수)
“조금 부담스럽지만 괜찮습니다. 나이가 어리니까 모든 걸 배우고 있어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다 즐겁습니다.” (예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개의치 않고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훈련만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재형)
자신의 장단점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도 거침 없이 대답했다.
“큰 경기 경험이 부족한 것 같아요. 하지만 대회를 치르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문제점이기 때문에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밤에 야간훈련을 하면서 부족한 점을 고쳐 나가고 있습니다.”(명수)
“장단점을 잘 모르겠어요. 그냥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는 것 같아요.”(예지)
“체력이 약해서 웨이트훈련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여러 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기 때문에 계속해서 배워 나갈 생각입니다.”(재형)
아직까지 경험이 부족하고 보완해야 될 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어리고 기본적인 재능이 뛰어나기 때문에 얼마든지 고쳐 나갈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강점이기도 하다.
대표팀 막내인 이들은 같은 목표를 갖고 있었다. ‘최종엔트리 선발’과 ‘올림픽 금메달’이 그것.
“최선을 다해서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습니다. 금메달도 꼭 목에 걸고 싶어요.”(예지)
“올림픽 출전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올림픽에 나간다면 꼭 금메달을 갖고 싶습니다.”(명수)
“한국양궁을 대표하는 선수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올림픽 출전과 금메달의 꿈도 꼭 이루고 싶습니다.”(재형)
수줍음 많은 평범한 학생들이었지만, 대화를 나누면서 승부근성과 배짱이 대단함을 느낄 수 있었다. 또 자신이 세계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라는 자신감도 갖고 있었다. 8명의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미 한국양궁의 차세대 주역으로 자리매김한 이들이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더 나아가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금빛 과녁’을 명중시키길 기대해본다.
스포츠동아 임동훈 기자 arod7@donga.com
(촬영)=신세기 기자 shk919@donga.com
(사진)=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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