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말은 잘 못하지만 일은 잘한다. 말이 아니라 일로 (국민의) 신뢰를 받겠다”고 했다. 그러나 건설회사 사장이야 일만 잘해도 될지 모르지만 한 나라의 지도자는 일도 잘하고, 말도 잘해야 한다. 지도자는 말을 매개로 국민과 소통하기 때문이다. ‘잘하는 말’은 번드르르한 것이 아니다.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겉치레 꾸밈말도 아니다. 투박하더라도 국민 마음에 와 닿을 수 있다면, 국민에게 믿음과 희망의 감동을 줄 수 있다면 잘하는 말이다.
“미안했고 감사드린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지난 5년을 보면 언어의 비용이 너무 컸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 국민의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우는 데 쓰이기보다는 오히려 갈등과 분열의 언어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도 얼마 전 “말씨와 자세에서 대통령 할 준비가 안 돼 있었다”고 토로(吐露)했다. 변호사 출신인 그의 말이 비록 달변이었는지는 몰라도 지도자의 언어로는 결격이었다는 점을 자인(自認)한 셈이다.
대통령의 격에 맞지 않는 언어는 대통령 직 자체의 권위 상실은 물론 그가 이끄는 정부에 대한 신뢰마저 잃게 한다. 참여정부의 실패 한복판에 ‘노무현의 언어’가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지도자의 말은 중요하다. 가장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인 이명박 씨의 말에 다시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후보는 열흘 전 검찰의 BBK 수사발표 직후 “(그동안) 저로 인해 국민 여러분의 마음고생이 심했을 줄로 안다. 늘 미안했고 또 감사를 드린다.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 드린 걸 조금이라도 갚는 진정한 길은 정권 교체를 이루어 경제를 살리고 갈라진 국민을 하나로 통합해 미래로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파나 지지세력 간 이해를 떠나 필자는 이 말이 최근 이 후보가 한 말 중에서 ‘가장 잘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검찰의 ‘혐의 없음’ 판정은 증거 유무(有無)에 따르는 법리상의 해석이지 그가 백설(白雪)같이 희다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검찰은 “(그의 큰형과 처남이 대주주로 있는) 다스가 ‘이 후보의 소유가 아닌 것 같다’가 아니라 ‘이 후보의 소유라는 증거가 없다’”라고 설명했다. 8월 중간수사 발표에서 “제3자의 것으로 보인다”던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국민의 절반 남짓이 검찰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인 것은 복잡하게 얽힌 사건의 중심에 이 후보가 있었다는 사실에서부터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다수 국민은 ‘이명박의 능력’을 기대하고 눈을 꾹 감았다. 망설이다가 지지로 돌아섰다. 그러니 그가 국민에게 미안해하고 감사를 드리는 것은 참으로 당연한 일이다. 또 그들 국민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경제를 살리고 국민 통합을 이뤄내 미래로 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지켜 내 보답해야 한다. 이는 재산 헌납보다 백 배, 천 배 중요한 약속이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국민 앞에 겸손, 또 겸손해야 한다. 오만해지는 순간 초심(初心)은 사라지고 만다.
임채진 검찰총장은 BBK 수사결과에 대해 “(증거에 따라) 있는 건 있고 없는 건 없다”고 했다. 검찰의 수사결과에 목을 매고 있던 신당 측이 불만을 가질 수는 있다. 수사의 미진한 부분을 지적하고 법에 따라 불복(不服) 절차를 밟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결코 믿을 수 없는 피의자의 말만 듣고 대뜸 수사 검사를 탄핵하겠다고 하는 것은 너무도 빤한 정략에 지나지 않는다. 하물며 한나라당과 재벌, 검찰이 손잡은 ‘수구(守舊) 동맹’에, ‘노명박(검찰이 이 후보를 봐주고, 이 후보 측이 노 대통령의 퇴임 이후를 보장하는 야합)’설(說)까지 들먹이며 한국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고 비분강개(悲憤慷慨)하는 것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오늘에 이른 나라와 국민을 모독하는 것이다.
국민의 뜻을 존중하라
나흘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국민의 선택은 가려질 것이다. 모든 후보와 정치세력은 그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국민의 뜻을 존중하는 데서부터 새로운 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
전진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