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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송년특집/논란의 재구성]학력 위조-디워 논쟁

입력 | 2007-12-15 03:01:00


《가짜 학위 사건이 잇달았다. 서막이었던 신정아 씨의 가짜 예일대 박사 학위 사건은 정치 종교 예술 문화계로 번지면서 학벌에 쉽게 휘둘리는 우리를 되돌아보게 했다. 심형래 감독의 영화 ‘디 워’를 둘러싼 논란도 비평 권력의 대중화와 함께 바람직한 비평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로 이어졌다.》

▼학력위조…들통난 ‘가짜’들의 행진

고백-참회, 또는 거짓말▼

신정아 의혹은 서막… 봇물터진 폭로전

논문 표절과 맞물려 사회불신 이어져

“신정아 씨가 광주비엔날레 감독이라고? 가짜 (예일대) 박사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올해 7월 초, ‘잘나가던’ 큐레이터 신 씨가 광주비엔날레 공동감독으로 임명되자 미술계에서는 이런 의혹이 여러 곳에서 제기됐다. “분명히 가짜”라고 단언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동국대 교수 시절부터 제기된 신 씨의 가짜 학위 의혹이 광주비엔날레 감독 선임 건으로 증폭되기 시작한 것이다.

신 씨의 가짜 박사 의혹은 서막에 불과했다. 이후 올여름 문화예술계와 종교계에서 활동하는 유명인들의 가짜 학력이 폭로나 고백의 형식을 통해 거의 매일 터져 나왔다.

가짜 학력 파문의 시발점은 신 씨를 둘러싼 의혹이 7월 초 언론을 통해 공론화되면서부터. 신 씨는 의혹이 그치지 않자 한 달 전인 6월에 동국대에 사직서를 제출한 상태였다. 신 씨는 가짜라는 사실이 드러나 광주비엔날레 감독에서 해임됐으나 계속된 의혹 제기에도 검증을 소홀히 했던 우리 사회의 안이함을 단적으로 보여 준 사건이 됐다.

특히 신 씨가 변양균 전 대통령정책실장과 연인 사이였고, 신 씨의 교수 임용 등에 변 전 실장의 후원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 사건은 현 정권을 휘청거리게 하는 대형 정치 사건으로 비화됐다. 신 씨의 동국대 교수 임용을 둘러싸고 불교계의 갈등이 드러났으며 광주비엔날레 감독 선임 과정에 대한 의혹도 잇따랐다.

신 씨 사건에 이어 라디오 영어프로그램 진행자인 이지영 씨의 학력 위조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명인들의 위조 학력 사례는 봇물 터지듯 했다. 이 씨는 중학 3학년 때 영국으로 건너가 브라이튼대를 졸업하고 언어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고 주장해 왔으나 실제는 고졸이었다. 이 무렵 만화가 이현세 씨도 고졸 학력을 서라벌예대 중퇴라고 했던 사실을 스스로 털어놓았다. 이 씨는 골프만화 ‘버디’ 3권의 작가 서문에서 “하룻밤 사이에 스타가 된 뒤 처음 한 인터뷰에서 대학을 중퇴했다고 거짓말을 했다”며 “그 후 25년간 학력은 내가 벗어날 수 없는 핸디캡이 됐다”고 말했다

8월에는 문화예술인들의 위조 사례가 줄줄이 이어지면서 그 파문은 더욱 커졌다. 김옥랑 동숭아트센터 대표, 연극배우 윤석화 씨, 영화배우 장미희 씨, 탤런트 오미희 최수종 최화정 씨, 작곡가 겸 방송인 주영훈 씨 등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하게 됐다” “나 자신도 괴롭고 힘들었다”고 해명했으나 그것은 또 다른 거짓말을 했다는 비난을 자초하기도 했다.

윤 씨는 1974년 이화여대 생활미술과에 입학해 1년 뒤 처음 무대에 오르면서 연극의 매력에 빠져 자퇴했다고 말해 왔다. 2005년 5월 월간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도 이화여대를 다녔다고 밝힌 바 있다. 사실이 드러나자 그는 “철없이 했던 거짓말이 30년 세월 동안 양심의 발목을 잡아 왔다”고 말했다.

주 씨는 “본의가 아니었다”고 해명했지만, 라디오에서 직접 “미국 조지메이슨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고 발언한 게 드러나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최수종 씨도 “한국외국어대 졸업 사실을 기재하거나 말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밝혔지만, 언론사와 인터넷 포털사이트 인물정보에 한국외국어대 무역학과(81학번)를 다닌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8월 중순, 학력 위조 파문은 종교계로 번졌다. 신도가 약 25만 명에 이르는 서울 강남구 포이동 능인선원의 원장 지광스님이 언론과 인터뷰를 갖고 “서울대를 중퇴했다는 것은 거짓이며 고등학교까지만 졸업했다”고 밝혔다.

그는 “1969년 서울고를 졸업하고 건강이 나빠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며 “당시 학력 제한이 없던 한국일보 기자 시험에 응시해 합격했으며 이후 이력서를 제출할 때 고교 선배의 조언에 따라 서울대 공대 중퇴로 기재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고 해명했다. 그리곤 “속죄하는 마음으로 참회 정진하며 살겠다”고 말했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가짜 학력 파문은 잠잠해졌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학력 위조가 사라졌다고 믿는 이는 거의 없다. “여의도(정치계)로 가서 조사해 보면 수두룩할 것” “미국 줄리아드 악원을 졸업했다는 사람들도 확인해 봐야 한다” “외국의 5년제 건축대학을 나온 뒤 박사급으로 행세하는 사람도 있다” 등 여러 이야기가 떠돈다. 가짜 학력의 유령이 우리 사회를 여전히 떠돌고 있는 것이다.

한편 지난해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와 신태섭(동의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KBS 이사가 논문 표절 의혹을 받은 데 이어 올해 벽두에 이필상 전 고려대 총장이 논문 표절 시비에 휩싸였다. 고려대 교수의회 진상조사위원회는 1월 하순 이 총장의 논문 2편을 표절 판정했고 다른 3편의 논문도 제자의 논문을 표절한 것으로 결론 냈다.

이 전 총장은 총장 신임 투표를 제안하기도 했으나 결국 2월 중순 총장에서 물러났다. 잇따른 표절 시비에 대해 관행상 어쩔 수 없었다는 동정론도 나왔으나, 앞으로 더 높은 수준의 학문윤리를 요구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디워 논쟁…작품사랑? 나라사랑? 인터넷 달군 댓글공방▼

흥행성 놓고 평론가-누리꾼 뜨거운 논쟁

막말 난무… 미성숙한 토론문화 드러내

개봉 전, 모두들 말했다. “그거, 되겠어?”

8월 한국 개봉, “심형래는 충무로에서 냉대 받았고 평론가들은 ‘디 워’에만 혹평을 퍼부었다.” “이런 수준 이하의 영화는 비평할 가치조차 없다.”

9월 미국 개봉,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미국 가서 망신만 당했다.”

2007년 여름을 뜨겁게 달군 영화 ‘디 워’ 논쟁을 단순화하면 이렇다.

1999년 ‘용가리’ 때문에 ‘신지식인’에서 하루아침에 ‘사기꾼’으로 몰렸던 심형래 감독은 개봉 전 잇달아 TV에 출연해 그동안의 고생담과 ‘할리우드 정복’에 대해 얘기했다. 그에 대한 동정론과 함께 ‘애국심 마케팅’이란 비난도 나오면서 인터넷을 통해 영화를 옹호하는 쪽과 비판하는 쪽 사이에 막말과 인신공격이 난무했다. 개봉돼 상영 중인 영화를 소재로 TV 토론까지 열렸다.

○ ‘디 워’는 과연 성공했나

공식 발표된 제작비는 300억 원. 한국 영화사상 최고액이다. 한국에서 843만 관객이 들었다. 극장 측 수입을 빼면 약 250억 원의 수입으로 손해를 본 것 같지만 배급사 쇼박스는 “부가 판권 시장을 감안하면 적자가 아니며 한국에서 제작비를 건진 셈”이라고 밝혔다. 이는 마케팅 비용을 제외한 것이어서 더 정확한 검증이 필요하다. 쇼박스는 마케팅 비용을 밝히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1097만 달러(약 101억 원)를 벌었다. 현지 마케팅비도 발표되지 않았으나 이를 100억∼150억 원으로 추정할 때 극장 수입만으로는 적자다. 쇼박스는 “미국에서는 부가 판권 수입이 극장 수입의 두세 배”라며 “내년 1월 8일에 DVD가 발매되고 유료 TV나 케이블TV 판권을 더하면 미국에서도 손해는 아니다”고 말했다.

영화진흥위원회 해외 특파원 보고서에 따르면 ‘디 워’는 뉴욕 맨해튼에서 가장 큰 극장인 ‘AMC 엠파이어 25’ 등 대형 멀티플렉스에서 개봉됐다. 개봉 첫 주 미국에서 개봉한 한국 영화 중 최대 흥행작인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수입(238만 달러)을 넘었지만 상영관당 수입은 그 3분의 1에 못 미쳤다. 2275개관이라는 상영관 수가 첫 주 흥행에 큰 영향을 미친 셈이다.

완성도에 대한 평가는 한국의 반응과 다르지 않았다. 보스턴글로브는 “의상 편집 음악 연기 연출 등이 엉망이지만 컴퓨터그래픽(CG) 장면은 감탄스럽다”고, 할리우드 리포터는 “CG는 인상적이지만 웃음이 터지는 스토리 라인에 우스꽝스러운 대사들, 싸구려 유머가 재미를 반감시킨다”고 평했다. 리뷰 사이트인 ‘로튼토마토닷컴’에서는 25%의 호평을 얻었으나 리뷰는 28건밖에 되지 않았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이 사이트에서 92%(131건 중 121건)의 호평을 얻은 바 있다.

‘디 워’의 김민구 조감독은 “수입이 문제가 아니라 미국에서 아시아 영화가 이 정도 규모로 개봉한 적이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며 “더 잘 만들었어야 하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잘 만든 영화들은 그동안 왜 진출을 못했는가”라고 반문했다. 영화평론가 전찬일 씨는 “한국에서 수백 개의 스크린을 잡는 것도 쉽지 않으니 분명 큰 의미가 있지만 많은 대가를 치르며 개봉해 과연 한국 영화의 이미지에 플러스가 됐는지는 생각해 볼 문제”라고 말했다.

○ ‘디 워’ 신드롬의 의미

‘디 워’ 현상을 ‘문화의 권력 이동’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있다. 한 영화의 팬 카페에 7만여 명이 가입하고 그들이 자발적으로 영화를 홍보하면서 영화 흥행의 주도권이 공급자에서 소비자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소통해 온 팬들의 발언이 폭발한 것으로 ‘디 워’는 이를 촉발하는 방아쇠가 됐을 뿐이다.

‘디 워’ 팬들은 이 과정에서 충무로가 심 감독을 ‘왕따’시켰다며 충무로를 ‘조폭 쓰레기 영화나 만드는 기득권 집단’이라고 비난했다. 이는 한국 영화계 전반에 대한 냉소로 번졌고 평론가들은 권위를 잃었다.

TV토론에서 ‘디워’를 비판했던 문화평론가 진중권 씨는 “평론가뿐 아니라 영화를 비판한 다른 팬들의 블로그도 초토화시키는 등 비판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문제였다”고 말했다.

과연 ‘디 워’에 대한 여론은 그렇게 뜨거웠을까. 영화평론가 김영진(명지대 교수) 씨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일부 누리꾼이 쏟아내는 의견이 무한 증식되면서 없는 논란이 생겨나고 실체보다 커 보였다”고 말했다. 소수의 누리꾼이 여론을 좌우했다는 것이다.

김민구 조감독은 “개인 홈페이지에 자신의 생각을 말한 사람들에 대한 공격이 난무할 때 속이 상했고 그런 누리꾼들은 오히려 ‘디 워’에 대한 고도의 안티 세력이었다”며 “잘못된 인터넷 문화로 생긴 부분적인 문제들이 영화 자체의 문제로 부각되는 바람에 예기치 않은 피해도 많이 봤다”고 말했다.

결국 ‘디 워’ 현상은 할리우드 진출이라는 이름표와 함께, 우리 사회에서 자신과 다른 견해를 인정하지 않는 토론 문화의 미성숙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로 남게 됐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