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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종별 입사선호기업 제2부]한화석유화학…조직문화

입력 | 2007-12-15 03:02:00


家社不二의 조직문화“믿는 만큼 믿어 줍니다”

이경종(45) 한화석유화학 부장은 올해 6월 특별휴가를 얻어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다녀왔다. 현지에서 공부하고 있는 딸 주연(18) 양의 고교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올해 초 ‘차석으로 졸업할 것 같다’는 딸에게 ‘졸업식에 참석할 수 없어 미안하다’는 말밖에 꺼내지 못했던 그였다.

한화그룹이 각 계열사의 ‘기러기 아빠’ 24명에게 특별 휴가와 항공료 등 여비를 지원하기로 결정하면서 그는 미국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아빠의 깜짝 방문’은 딸에게도 큰 기쁨을 줬다. 주연 양은 아버지 몰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게 감사의 e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이 부장은 “불이익을 받을까 봐 ‘기러기 아빠’라는 사실조차 숨기는 다른 회사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라며 “세세한 부분까지 배려해 주는 회사가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가사불이(家社不二)’의 조직 문화는 객관적인 수치로 나타나지 않는 한화석유화학의 숨은 경쟁력이다. 이 회사는 신용과 의리를 중시하는 한화그룹의 조직문화에 글로벌 경쟁력을 입히는 실험을 하고 있다.

김 회장은 “임직원과 그 가족은 저의 가족과 다르지 않다”며 “하루하루가 전쟁터인 이 거친 세상을 함께 의지하고 믿고 돕는 저의 동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김 회장이 ‘기러기 아빠’를 위한 특별 휴가와 여비 지원을 결정한 이유다.

한화석유화학은 회사와 직원 가족을 가로막는 벽이 낮다. 회사를 ‘제2의 가정’이라고 생각하는 직원이나 ‘아버지의 직장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하는 직원 자녀도 적지 않다고 한다.

여수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한상택 상묵 상덕 삼형제는 가족이면서 동시에 직장 동료이기도 하다. 맏형 한상택 대리의 뒤를 따라 두 동생이 한화석유화학에 몸을 담았다.

끈끈한 조직문화는 팀워크와 자율적인 혁신으로 이어졌다. 올해 6월 위험물기능장시험 합격자 58명 중 6명이 한화석유화학 울산공장에서 배출됐다. 특별한 교재가 없는 이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직원들이 서로 도와가며 하루 5시간씩 공부하며 올린 성과다.

여수공장 주차장에는 ‘칭찬맨’이라고 쓰인 주차공간이 있다. 이 공장의 VCM생산팀이 팀원 중 모범적인 직원을 ‘칭찬맨’으로 뽑고, 간부들이 쓰던 출입문과 가장 가까운 주차공간을 내준 것이다.

“100주년을 넘어, 200주년을 넘어 이렇게 아름다운 자리를 만들도록 우리 모두 힘차게 나아갑시다.”

올해 10월 12일 서울 중구 장교동 한화그룹 본사에서 열린 그룹 창립 55주년 기념 음악회장. 허원준 한화석유화학 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100년 이상 가는 기업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한화석유화학은 금융 제조 유통레저 등의 3개 부문으로 나뉜 한화그룹의 제조분야 주요 계열사다. 그만큼 그룹에서 거는 기대도 크다.

최근 이 회사는 ‘글로벌 창조경영, 새로운 도약’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조직문화 혁신과 인재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원가 경쟁력이 높은 중동지역 석유화학 업체들이 대규모 석유화학 설비 신증설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국내 사업 중심의 성장 전략은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는 현실 인식 때문이다.

이는 “글로벌 시대에는 둥지만 지키는 텃새보다는 먹이를 찾아 대륙을 횡단하는 철새의 생존 본능을 배워야 한다”는 김 회장의 경영 비전과도 맞닿아 있다.

한화석유화학은 요즘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하이브리드 인재’ 발굴에도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사장보다 더 좋은 대우를 해 줘도 좋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직원마다 업무와 역량이 다른 만큼 모두 같이 대우하기보다는 역량과 성과에 따른 합당한 보상을 통해 핵심 인재를 확보하고 궁극적으로 기업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한화석유화학은 해외 대학을 돌며 경영학석사(MBA) 출신의 우수 인재를 유치하는 한편 입사 5년차 사원에게 미국 또는 유럽을 2주간 탐방하도록 지원하는 등 글로벌 인재육성 제도도 실시하고 있다.

해외 전략지역에 1년간 파견하는 ‘지역전문가 과정’, 국내외 우수대학 MBA 과정에 입학하면 학비와 급여를 주는 ‘국내외 MBA 지원제도’ 등도 도입했다.

하지만 보수적인 조직문화와 여성 인재의 활용이 더딘 점은 풀어야 할 과제로 지적된다. 한 직원은 동아일보 설문조사에서 회사의 약점으로 “조직문화가 다양하지 못한 데다 정체돼 있다”며 “다양한 연령과 계층이 어울릴 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실제로 대졸 정규직 직원 중 여성 비율은 5.4%다. 그룹 내 여성 직원 가운데 정년을 마친 사람은 올해 10월 정년퇴직한 이 회사의 서인석 과장이 처음이다.

한화석유화학 측은 “2000년 이후 우수 여성 인력 유치를 추진한 결과 여성 인력 비율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며 “올해 상반기(1∼6월) 대졸공채 신입사원의 18.2%가 여성”이라고 밝혔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