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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어, 그림뿐이네… 엄마랑 한번 얘기 꾸며 볼까?

입력 | 2007-12-15 03:11:00


◇어느 바닷가에 눈먼 어부와 강아지가 살았습니다/김수연 그림/28쪽·8000원·보림

글자 없는 그림책을 아이들에게 읽히기란 쉽지 않다. 책에 맛들일 즈음엔 엄마가 소리 내어 들려주는 이야기나 제가 직접 글자를 읽어가는 재미에 빠지게 마련. 글자 없이 그림만으로 이야기를 헤아리는 일을 외려 난감해 하는 아이들이 적잖다.

그렇지만 글자에 ‘갇히지’ 않기 때문에 더 큰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만큼 생각의 여지가 많다는 의미다.

‘어느 바닷가에 눈먼 어부와 강아지가 살았습니다’라는 그림책은, 제목은 길지만 그게 이 그림책에 대한 글자의 전부다. 책을 한 장 넘기면, 바닷가를 배경으로 밧줄에 의지해 더듬더듬 걸어가는 눈먼 어부와, 그보다 앞장서 가는 강아지가 나온다. 한눈에 봐도 둘이 얼마나 끈끈한 사이인지 알 수 있다. 어부가 그물에 걸린 물고기를 건져 올리는 동안 강아지는 운 좋게 그물을 빠져나간 물고기와 놀고, 때로는 그물을 찢으러 오는 갈매기를 향해 짖기도 한다.

작가의 상상은 이제부터다. 강아지의 등에서 갑자기 날개가 돋아나 갈매기를 향해 날아간다. 짖는 것밖에 못하던 강아지는 이제 갈매기와 나란히 날면서 마음껏 혼내줄 수 있다. 조금 있다가는 다 잡은 물고기를 놓친 어부가 물고기로 변해 놓친 물고기를 찾아 바다를 헤엄쳐 다닌다.

모노톤의 목판화는 자칫 어두운 분위기를 낼 수 있는데, 이 그림책은 따스하다. 강아지가 컹컹 짖는 소리, 어부가 물길을 걸을 때 나는 찰방찰방 물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물에 걸린 커다란 물고기를 건져 올리는 어부의 얼굴은 울적한 표정인데도 웃음이 쿡 나오는 듯한 유머가 서려 있다.

이 그림책은 독특한 방식으로 자연과 우정에 대해서 전한다. 물고기가 된 어부가 상어의 공격을 받게 되자 바위로 변해 물속에 뛰어들어선 상어를 막아서는 강아지. 마지막에 이르면 어부가 강아지인지, 강아지가 어부인지 모호해진다. 누가 누군지 모를 만큼 어우러진 이들의 모습은 둘 사이의 끈끈하고 단단한 정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더 나아가 자연과 그 속에 있는 생물들이 함께 살아가는 평온한 즐거움을 전한다.

영국에서 판화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는 이 그림책으로 영국 빅토리아앨버트미술관이 주관하는 V&A일러스트레이션상을 받았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디테일에서는 잘 갈고닦은 테크닉과 부드러운 유머를 엿볼 수 있으며, 드로잉과 스케치는 복잡한 발상의 전개를 한눈에 꿰뚫어 볼 수 있게 해 준다”고 평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